한국 정부의 기회주의적 입장을 비판한다

[핫핑크돌핀스 이슈 분석] 국제포경위원회에서 한국 정부는 포경에 대한 기회주의적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9월 14일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 국제포경위원회(IWC) 67차 총회가 끝났다. 이번 2018년 총회(이하 IWC67로 표기)에서 관심은 단연 일본이 제출한 상업포경 재개안에 쏠렸다. 의장국 지위를 이용한 일본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돈벌이 목적의 고래잡이 부활을 획책했고, 일부 국가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1986년 이후 유지되어 왔던 상업포경의 무기한 유예조치에 대한 결정이 번복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격론 끝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국제포경위원회는 마침내 총회 마지막 날 일본의 제안을 표결에 붙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결정을 번복하자는 제안이니만큼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했고, 표결 결과 총 89개 회원국 가운데 27개국 찬성, 41개국 반대, 2개국 기권으로 일본의 상업포경 재개 제안은 부결되었다. 지난 시기 이뤄진 무차별적인 포경으로 멸종위기에 내몰린 대형 고래류의 개체수가 아직 상업포경을 재개할만큼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를 대표에 IWC67에 참가한 해양수산부 대표단은 일본의 상업포경 재개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기권이라니? 한국과 함께 기권표를 던진 나라는 러시아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왜 기권했을까? 이에 대해 러시아 대표단은 국제포경위원회 내부는 이미 포경찬성국과 포경반대국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해왔고,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러시아는 이런 극한 대립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자 기권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국이 기권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총회 첫날 한국 대표로 참가한 강인구 해양수산부 국제협력총괄과장이 발표한 ‘포경에 관한 한국 정부 입장문’에 잘 나타나 있다. 기회주의적 수사와 책임 회피성 변명 및 억울한 호소로 가득 차 있는 이 입장문의 내용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은 오랜 포경 전통을 갖고 있으나 1986년 이후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모든 포경을 중단하고 관련 규정을 잘 준수하고 있으며 불법포경을 단속해온 한국 정부의 충심을 회원국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포경문화가 끊어지면서 포경을 업으로 삼아온 한국 어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포경을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국제사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막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한국은 IWC의 결정을 따르는 국제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입니다.”

*한국 포경 입장문 원문 읽기 https://portal.iwc.int/event_document_files/download/6081 (간단한 회원가입 필요)

그런데 올해 발표한 입장문은 2012년 파나마에서 열린 총회에서 당시 한국 정부 참가단의 강준석 대표가 발표한 입장문과 기본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포경업자들의 압박에 휘둘려온 한국 정부는 과학포경이라도 재개하고 싶다며 포경찬성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지만, 국제사회의 첨예한 비판이 쏟아지자 꽁지를 내리고 슬그머니 포경재개 입장을 철회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한국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자제한 채 국제 동향을 면밀히 주시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간 일본의 막무가내 포경재개 방침에 영향 받은 나라들이 늘어가자 은근히 상업포경이 재개되지 않을까 기대했고, IWC67에서도 여전히 포경 반대가 좀더 강해지자 또다시 의견 표명을 미룬 채 기권하고 만 것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은 포경에 대해 이런 식의 기회주의적 입장을 지난 30여년간 유지해왔다.

IWC67에서 논쟁이 된 사안은 일본의 상업포경 말고도 더 있다.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지정과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 채택건이다.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South Atlantic Whale Sanctuary) 지정은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지난 몇 년간 가장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적도 아래부터 남극해에 이르는 남대서양 해역은 멸종위기종인 보리고래와 참고래의 주요 서식처이지만 만연한 고래 포획 때문에 대형 고래들의 개체수가 빠르게 줄고 있는 지역이다. 상업 포경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지역 전체를 고래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것이 브라질과 우루과이, 가봉 등의 대서양 연안 국가들이 이 안건을 제안한 이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안건은 또다시 부결되고 말았다. 찬성 39개국, 반대 25개국, 기권 3개국으로 찬성이 절반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은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지정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고 말았다. 고래보호구역 지정보다는 포경 재개에 염두를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언론 기고를 통해 해양보호구역을 확대하자며 짐짓 해양생물 보호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일보 9월 7일자 기고문 ‘알바트로스의 눈물 닦아줘야’ 원문 읽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04259&code=11171314) 국내에 알려진 언론 기고를 통해서는 해양생물 보호를 위해 해양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며칠 후 개최된 국제무대에서는 고래보호구역 지정에 반대표를 던지는 자기모순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포경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자가당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IWC67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참가국들이 가까스로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을 채택했다는 데 있다. 이 선언은 상징적 선언이지만 고래를 영구히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고래 개체수가 회복될 때까지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포경을 무기한 유예하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IWC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과학조사 목적의 포경에서도 살상을 해서는 안 되고, 비살상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할 것을 결의한 것도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 선언은 일본을 비롯한 참가국들의 반대가 심해 하마터면 채택되지 못할 뻔 했다. 논란 끝에 표결이 이뤄졌고 40개국 찬성, 27개국 반대, 4개국 기권으로 아슬아슬하게 과반수를 넘겨 채택된 것이다. 한국은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 채택에 ‘반대표’를 던졌다. 반면에 IWC67 또 다른 이슈였던 원주민의 생존 포경 안건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행보만 보더라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 포경 중단 결정을 존중하며 잘 지키고 있다는 한국의 입장이 얼마나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지 잘 드러난다. 이쯤 되면 한국 시민으로서 거짓말을 일삼는 정부에 부끄러움을 감추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한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또 있다. 2017년 조사 결과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불법포경국으로 드러난 것이다. 국제포경위원회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세계에서 1,380마리의 대형 고래류가 포획되었고, 일본이 과학포경으로 596마리를 잡았으며, 포경찬성국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가 상업포경으로 각각 432마리와 17마리를 잡았으며, 캐나다, 덴마크 그린란드, 미국 알라스카, 러시아 추코트카 등지에서 원주민들이 생존포경으로 333마리를 잡았는데, 한국이 유일하게 불법포획(poaching)으로 밍크고래 두 마리를 잡은 것으로 보고된 것이다.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은 국내법으로 포경이 허용되는데 반해, 포경이 불법임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국제사회에 보고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은 불법 포경을 엄격하게 단속하기는커녕 울산 검사가 여러 정황상 불법 포획이 뻔해 보이는 고래고기 장물 21톤을 포경업자들에게 환부해 수십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기게 하고도 아무런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가 하면 수차례 포경 전과가 있는 업자들에게도 단순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이들이 풀려나자마자 다시 바다의 로또를 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울산, 부산, 포항 등지에서는 불법이 의심되는 고래고기 소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모두 혼획 고래의 유통을 허용하는 허술한 사법체계와 고래 포획이 중범죄가 아니라는 안이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매년 2천 마리에 이르는 고래류가 우연히 그물에 걸린 혼획으로 죽어 가는데도 실질적인 보호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유 역시 사법기관부터 주무 관청인 해양수산부 공무원들 그리고 고래고기를 즐기는 일부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불법을 뿌리뽑아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대표단이 국제사회의 결정을 잘 지키고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중요한 결정에 모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한국은 기회만 엿보면서 국제포경위원회가 포경 찬성으로 기울어지도록 소심한 투표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포경에 관한 거짓 투표를 중단하고, 수오지심을 느껴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부는 한국 해역에 유일하게 남은 대형 고래인 밍크고래를 지금이라도 즉시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불법포획을 불러오는 고래고기의 유통을 전면 금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한국에서 고래를 보호하느냐 아니면 포경을 찬성하느냐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17일 핫핑크돌핀스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부결 – 각 나라별 투표 현황 (한국 반대)
원주민 생존포경 채택 – 각 나라별 투표 현황 (한국 찬성)
일본 상업포경 재개안 부결 – 각 나라별 투표 현황 (한국 기권)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 채택 – 각 나라별 투표 현황 (한국 반대)
2017년 전세계에서 잡힌 대형 고래류 현황. 한국은 두 마리 고래를 불법포획했다. 자료 출처 IWC, IUCN. 인포그래픽 작성 AFP. IWC67 관련 기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https://www.france24.com/en/20180913-iwc-passes-brazil-project-protect-wh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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