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젖 뗀 지 얼마 안된 참고래 배 속에 숱한 플라스틱

지난번 참고래 부검 이후 제주돌핀센터에 찾아와 함께 대정읍 앞바다를 모니터링하며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해양쓰레기 문제에 대해 취재했던 김기범 기자가 기사를 올렸습니다.

어미 젖 뗀 지 얼마 안된 참고래 배 속에 숱한 플라스틱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2020.01.09

한림항에서 국내 첫 부검…부유 쓰레기 심각성 온몸으로 호소
수염에 나일론은 평생 달고 다녔어야…낚시 금지 등 보호 시급

지난 4일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확인된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새끼 참고래의 몸속에서는 끊임없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참고래의 체내에서는 낚싯줄이 발견됐고, 소화기관에서는 해양 부표에서 떨어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스티로폼이, 먹이를 걸러내는 수염에서는 초록색 나일론 재질의 끈들이 다수 확인됐다. 태어난 지 1년 정도밖에 안됐음에도 인간이 버린 해양쓰레기를 피할 수 없었을 만큼 해양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새끼 고래의 사체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4일 제주 한림항에서 실시된 제주대, 한양대, 세계자연기금(WWF),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등의 참고래 부검 연구에서는 다수의 해양쓰레기와 함께 앞으로 국내 고래 연구의 초석이 될 만한 다양한 시료들이 확인됐다. 국내에서 다수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과학적 부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검 대상인 새끼 참고래는 지난달 22일 한림읍 비양도 인근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당초 밍크고래로 여겨져 고래고기로 유통될 뻔했으나 유전자 분석 결과 멸종위기 참고래로 확인돼 부검 연구가 이뤄지게 됐다.

참고래의 소화기 내에서 나온 해양쓰레기

길이 약 12.6m, 몸무게 12t인 이 참고래는 함께 이동하던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남은 개체로 추정된다. 참고래는 다 자라면 길이가 20m가 넘는 수염고래로 태어날 때부터 길이가 10m를 넘는다. 고래는 몸집이 크고 수염이 있는 수염고래와 작고, 이빨이 있는 이빨고래로 분류된다.

이날 부검 연구에 다양한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시민과 학계의 높은 관심을 받은 것은 대형 고래의 부검 자체가 처음인 데다 고래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시료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인 규명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해역을 지나다니는 참고래의 습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부검에 참가한 기관들 중 한양대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 등 체내 오염물질 분석을, WWF는 질병과 바이러스, 서울대는 기생충, 인하대는 해양 쓰레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먹이 분석을 맡고, 제주민속박물관은 골격 표본의 제작을 담당하게 된다.

참고래의 수염에 걸려있던 해양쓰레기

참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상 취약(VU) 범주에 포함돼 있는 동물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개체 수는 10만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세계 전체로 보면 멸종 직전까지는 아니지만 동아시아 주변 해역에서는 포경으로 인해 지역절멸 위기에 놓인 동물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참고래가 어디서 번식하고, 어떤 먹이를 먹고, 어디서 어디까지 회유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져 있지 않다. WWF 이영란 해양보전팀장은 “일본에서 10월에서 12월 사이 새끼 참고래가 죽은 채 발견되곤 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와 일본 주변 해역에 참고래 번식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래의 소화기 내에서 나온 해양쓰레기

참고래의 영어 이름은 ‘Fin whale’인데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사이트들이 어학사전에 참고래의 영어 이름을 ‘Right Whale’로 잘못 표기해 놓고 있는 탓에 이번 부검 소식을 들은 해외 해양생물학자, 수의학 관계자 들의 관심이 국내에 집중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Right Whale은 긴수염고래를 가리키는 영어 이름으로, 긴수염고래는 참고래보다 더 심각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고래다. 그런데 국내 한 통신사가 참고래 부검에 대한 영어 기사를 쓰면서 참고래를 Right Whale로 번역해 기재한 탓에 한국에서 희귀종인 긴수염고래가 발견됐다는 오해를 일으킨 것이다. 이영란 팀장은 “해외의 고래 연구 관계자들로부터 너희 나라에서 긴수염고래가 발견됐냐는 연락이 와서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참고래의 두개골을 중장비로 옮기는 모습

이날 부검에서는 참고래가 배에 부딪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사인 역시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팀장은 “그물에 엉켜서 질식해 죽은 경우 기관지에 거품이 보이는데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탓에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새끼 참고래의 크기 등으로 보아 한 살 정도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고래의 연령을 확인할 수 있는 두개골 내 귀지는 현재 MARC에서 확인 중이다. 보통 수염고래의 나이는 귀뼈에 쌓이는 귀지를 통해 확인하는데, 이 부분을 절개하면 나이테 같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빨고래는 이빨을 잘라보면 나이테를 확인할 수 있다.

고래는 여름철 극지방에서만 먹이를 먹고, 겨울철 번식을 위해 이동하는 중간에는 먹이를 거의 먹지 않는다. 대형 고래들이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한 것 자체가 영양분을 한꺼번에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이다. 약 5000만년 전 육지에서 바다로 돌아간 고래의 조상 파키케투스는 늑대 정도 크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래가 육지에서 바다로 돌아갔다는 증거는 퇴화된 골반뼈에 남아있다. 뒷다리는 물속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에 퇴화했고, 앞다리 역시 지느러미 모양으로 작아졌지만 내부에는 어깨벼뿌터 발가락뼈까지 과거 지상에서 살던 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고래는 진화과정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 꼬리지느러미를 얻었고,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등지느러미가 생겼는데 이들 부위의 내부에는 뼈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래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귀뼈

이번에 부검한 새끼 참고래의 경우 젖을 뗀 지 얼마 안된 개체임에도 체내에서 숱한 플라스틱이 나온 것은 그만큼 바다에 부유하고 있는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팀장은 “수염고래들은 물과 함께 플랑크톤을 흡입한 뒤 수염에 플랑크톤을 부착시켜 먹이로 삼는다”며 “이번에 새끼 참고래의 수염에서 확인된 나일론 재질의 플라스틱 등은 걸러지지 못한 채 평생 고래의 수염에 남아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 바다의 오염 상태는 고래 부검을 하거나 바닷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 바닷가에만 나가봐도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지난 4일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둘러본 제주 대정 앞바다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주말이었던 이날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인 대정 앞바다에는 곳곳에 낚시꾼들이 몰려 있었다. 해안 여기저기에는 이들이 장시간 낚시를 하면서 버린 쓰레기와 낚싯줄 등이 널려 있었다. 쓰레기를 회수해서 가져가는 낚시꾼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남방큰돌고래의 국내 주요 서식지인 제주 대정읍 해안에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

이날 대정 앞바다에서는 낚시꾼들로 인한 생태계 교란도 확인됐다. 목격된 50마리 이상의 남방큰돌고래들은 낚시꾼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깊이 잠수를 하거나 빠르게 통과한 반면 낚시꾼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는 천천히 머물면서 먹이활동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성체가 안 된 돌고래들이 물 위로 연신 뛰어오르며 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곳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낚시꾼들이 많이 몰린 곳이 물고기도 많이 잡히는 곳임을 감안하면 다수 낚시꾼들의 존재가 남방큰돌고래들의 먹이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무분별한 낚시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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