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돌고래 “먼바다 고향 잊은 채 오늘도 인간들 위해 쇼 합니다”

국민일보 기사 원문 읽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5271

수족관의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해양 포유류다. 물범이나 고래류처럼 덩치가 크면서 희소가치가 있는 이들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돌고래의 주목도가 가장 높다. 국내에서는 ‘돌고래 쇼’를 볼 수 있고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흔치 않은 볼거리란 인식에 수족관 속 고래류 관람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험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일 뿐이다. 고래류의 입장에서 수족관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드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기회를 박탈하는 족쇄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서식 환경이 괜찮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열악한 공간에 갇혀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3년부터 불법 포획한 남방큰돌고래의 방류가 시작된 배경이기도 하다. 첫 사례인 ‘삼팔이’를 시작으로 ‘제돌이’ 등 모두 7마리가 고향인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갔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8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7개 수족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고래류는 30마리나 된다.

“고래류,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크게 3종의 고래류가 수족관 신세에 처해 있다. 큰돌고래와 남방큰돌고래, 흰고래(벨루가)가 주인공이다. 태평양이 주무대인 큰돌고래가 22마리로 가장 많다. 멸종위기 근접종으로 지정돼 있는 벨루가는 7마리,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1마리가 남아 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들 역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단순히 인도적 차원의 주장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수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29마리의 고래류가 폐사했다. 패혈증(11마리)이나 폐렴(7마리)이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연수명을 누리지 못한 개체가 절반 이상이다. 수족관이라는 서식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일부가 타의에 의해 ‘돌고래 쇼’에 등장한다는 점 역시 방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2013년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의 사례가 회자된다. 제돌이를 풀어줘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의견이 나온 밑바탕은 돌고래 쇼였다. 불법으로 포획된 이들이 상업적으로까지 이용된다는 사실에 여론이 들썩였다. 적응훈련 이후 야생 환경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지역 명물이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양이원영 의원은 “모든 고래류는 일정 정도 훈련을 통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벨루가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물론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자는 주장을 마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벨루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적응훈련을 거쳐야 할 고향이 너무 멀다. 북극해와 베링해, 캐나다 북부 해역, 그린란드 주변과 같은 차가운 해역에서 생활한다. 7마리의 벨루가를 고향에 풀어주려 해도 여건 마련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측에서 벨루가의 주서식지인 아이슬란드 측과 접촉해 봤는데 협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적응훈련도 없이 풀어주기는 너무 위험하다. 천적이 없는 수족관 환경에 이미 익숙해진 탓이다. 설령 천적을 피한다고 해도 사람이 주는 ‘죽은 먹이’에 익숙해져 있다. 살아 있는 먹이를 쫓아다니는 본능을 일깨우지 못한 채로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의 김현우 박사는 “포획 후 시간이 많이 지난 개체들은 야생성을 잃어버려 방류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돌이 방류를 주도했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벨루가를 자연으로 돌려 보낼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벨루가를 포함한 30마리의 고래류 모두 ‘사유 재산’이라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보상 등 경제적 측면의 반대급부 없이는 수족관 사업자의 반발을 피하기 힘들다.

동물원·수족관 기본계획, 절충점 될까

갖가지 난관이 있기는 해도 절충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방류에 난색을 표하는 이들도 고래류의 복지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만큼은 이견이 없다. 풀어줘야 한다는 이들 역시 방류 이전 단계에서는 안락한 시설 제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족관 시설을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해 폐사를 막자는 것이다.

해수부와 환경부는 최소한의 목표 달성을 위해 이달 중 ‘동물원·수족관 기본계획’을 공개할 계획이다. 등록제로 돼 있는 수족관을 허가제로 바꾸는 내용과 함께 고래류 관리 방안이 포함된다.

논란의 시작점인 돌고래 쇼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긴다. ‘끌어 안기’나 ‘올라 타기’와 같은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기로 했다. 전면 금지보다는 약하지만 강제성을 지닌다. 위반할 경우 벌칙을 주는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동물원수족관법’을 개정해 이러한 내용의 복지 조문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예 고래류 전시 자체를 대체할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고래류를 전시하는 것도 가상 체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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