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당신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 입니까? 난개발 현장에 선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대지의 목소리’

난개발 현장에 선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대지의 목소리’

난개발 현장에 선 제주 사람들. ‘이대로 제주가 버티지 못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라지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인 제주의 대지 위에 선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저에게 제주는 생명입니다.”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운동장에 선 오창현(45)씨. 수산초교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항공기 소음이 큰 이륙 방향이다. 오씨는 “학교가 있기에 마을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라며 “비행기 소음으로부터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산읍 수산리 감귤밭 앞에 선 오찬율(70)씨. 그의 농장은 제주 제2공항 예정지 북쪽 끝에 인접해 있다. 오씨는 “부모님의 대를 이어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다”면서 “평화로운 삶의 연속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산읍 난산리 자택 앞 골목길에 선 채옥길(86)씨와 아들 김경배(51)씨.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 한복판에 사는 모자는 강제이주 대상이다. 김씨는 지난 10월 제주도를 상대로 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를 막아서다 차바퀴에 오른쪽 다리가 깔리면서 종아리가 분쇄골절 되는 중상을 입었다.

제 고향 성산읍 난산리는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병풍처럼 펼쳐진 오름 군락과 바다, 그리고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아름다운 곳이지요. 4년 전 우리 마을에 새로 공항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TV를 통해 그 사실을 접했습니다. 애초부터 동의나 의견을 구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와 제 어머니가 사는 집터 위로 활주로가 깔리고, 마을 주민 80%가 강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행정가들은 그저 이 대지를 ‘개발되지 않은 땅’ 정도로 여기지만, 이곳엔 오랜 세월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간직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본질을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일궈온 농토는 비싼 값에 팔리는 부동산이 됐고, 대지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농민들은 욕망의 부채질 앞에 찢어져 나뉘었습니다. 사람들이 지쳐서 이 땅을 버리고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제 고향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총 80일 동안 단식을 감행했습니다. 마을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삶의 근간을 흔드는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제주는 ‘숨 쉬는 숲’입니다.”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에 선 김정임(58)씨. 중국 기업인 신해원 유한회사는 현재 송악산 일대에 호텔(464실)과 휴양문화시설, 편의시설 등을 조성하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1월 이 사업에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김씨는 “송악산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태적,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곳”이라며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이곳에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다”라고 말했다.
예래동 예래휴양형주거단지(이하 예래단지) 앞에 선 진경표(54)씨. 예래단지 사업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2005년부터 서귀포시 예래동에 1535실의 휴양콘도와 935실의 호텔 등을 짓는 계획으로 추진해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에 진씨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2007년 1월 JDC에 강제수용 당했다. 2018년 1월 법원은 고급 주거시설인 예래단지가 공익성을 가져야 하는 유원지 건설 취지에 어긋난다며 토지를 되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구좌읍 송당리 비자림로 숲에 선 이진아(37)씨. 이곳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도로확장을 위해 수십 종의 나무 3000여 그루가 베어졌다. 훼손된 숲 인근에선 팔색조, 붉은해오라기 등 법정보호종이 잇따라 발견됐다. 이씨는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숲에 깃들어 있는 ‘숨’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비자림로 숲에서 말합니다. 여기는 생명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숲이 사라진다는 건 곧 숨을 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수많은 나무가 죽었습니다. 제주도는 겉으로 자연과의 공존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실제론 숲을 파괴하는 데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숲의 질서를 부정하고 모독했습니다. 지역 정치가는 ‘자연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앞세우며 숲의 가치를 평가 절하했습니다. 자연은 정치적 수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지적합니다. ‘계획노선에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각종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됨’이라고 평가서에 기록됐지만, 실제로 비자림로 숲에는 수많은 법정보호종이 깃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숨을 지키고자 숲으로 걸어 들어갔고, 지금은 뭇 생명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올바른 방식을 요구합니다. 오름과 숲과 하천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본디 연결돼 있습니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서식지를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을 궁지로 내몬 뒤에, ‘저감 방안’을 논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습니다. 같은 대지 위에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더는 베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입니다.

#“저에게 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한경면 두모리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앞에 선 조약골(46)씨. 현재 제주도는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인 대정 앞바다에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같은 멸종위기생물들이 인간과 공존하는 것이 평화”라고 강조했다.
구좌읍 송당리 천미천에 선 김키미(40)씨. 그는 지난 6월 하천정비공사가 진행 중인 천미천에서 천연기념물 원앙의 번식을 제주 최초로 확인했다. 김씨는 “공사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서의 환경영향평가 진행된 후 제주 자연 곳곳이 제멋대로 파헤쳐졌다”면서 “지켜야할 것이 있다면, 늦기 전에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조천읍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 부지 인근 습지 앞에 선 이진희(44)·이채희(10) 모녀. 채희양이 다니는 선인분교는 동물원 자리에서 600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비자림로 숲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조천읍 선흘2리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조천읍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이 속한 지역이며 선흘곶자왈과 동백동산습지를 끼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 도시로 지정됐습니다. 조천읍은 제주 안에서도 특별한 곳입니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제대로 숨 쉬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숲을 선물해줬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뻤습니다. 자연과 일상이 온전히 연결된 땅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명 그룹이 마라도 면적 두 배 규모의 동물원·숙박시설을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을에서 채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자와 기린, 코끼리, 코뿔소 등 23종의 동물 500여마리를 방목한다는 것입니다. 제주도는 이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선 그 자리에 아프리카 초원 등지에서 사는 동물을 들여오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자연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건 오래된 지혜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이 개발의 대상이 아님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갖는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지절대는 새소리를 듣고, 학교에 가고, 숲길을 걷는 아름다운 일상을 지켜 주세요.

제주=글·사진·동영상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세계일보 밀착취재 기사 원문 읽기 http://www.segye.com/newsView/2019112450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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