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와 바다 멋져보여도…남방큰돌고래에겐 ‘생존 위협’입니다

풍차와 바다 멋져보여도…남방큰돌고래에겐 ‘생존 위협’입니다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2019.08.01

제주 대정읍 해상풍력단지 계획
수협·양식업체, 피해 우려 반대
환경단체 “돌고래 서식지 파괴”
‘탐라발전’ 주변서 자취 감췄듯이
먹이활동 어려워지면 혼획 위험도

제주시 한경읍에 있는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2012년 해상풍력발전 공사가 시작된 이후 이 지역 연안에서 돌고래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조사 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상 대대로 살던 집에 갑자기 큰 소음을 발생시키는 괴물체가 발생해 간신히 마련한 집에 이사했는데 비슷한 소음을 만드는 괴물체가 들어온다면 어떤 심정일까. 괴물체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또다시 새 집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 될 것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해양포유류이자 최근 들어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방큰돌고래가 이처럼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제주도와 한국남부발전이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1리 앞바다에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 제주도와 남부발전의 대정해상풍력발전 계획은 약 5700억원을 들여 전체 설비용량 100㎿(메가와트)인 발전시설 19기를 2022년까지 건설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2011년부터 사업을 추진해 ‘지구 지정 동의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동의안은 주민과 해당 지역 내 양식장, 수협,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상정 및 처리가 지연되다가 2018년 도의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제주도는 지난해 10월 다시 ‘지구 지정 계획(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현재 해상풍력 설치를 반대하는 곳은 모슬포수산업협동조합과 대정읍 일대의 육상 양식업체들, 환경단체 등이다. 모슬포수협은 해상풍력시설이 모슬포항 인근에 들어서면 항구 이용도가 낮아지면서 지역경제가 파탄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양식업체들은 소음 및 진동으로 인한 양식어류 피해와 해수오염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해양동물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는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처인 대정읍 연안에 풍력단지를 건설할 경우 서식처가 파괴되고, 돌고래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정읍은 제주도에서 성산읍, 구좌읍과 함께 남방큰돌고래를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남방큰돌고래들이 먹이활동을 하면서 오랜 시간 머물기 때문에 육상에서도 쉽게 관찰돼 돌고래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대정읍 해안도로에는 돌고래 관찰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카페나 숙박업소들도 들어서 있다. 

제주 서남쪽인 대정읍 연안에 돌고래들이 오래 머물게 된 것은 이 일대의 해양생물 다양성이 높고, 먹이 자원이 풍부한 것도 있지만 다른 지역은 개발돼 돌고래들이 머물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준공된 제주 서북쪽 한경읍의 탐라해상풍력발전이 돌고래들을 몰아낸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해상풍력발전 공사가 시작된 이후 이 지역 연안에서 돌고래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조사결과들이 다수 나와 있다. 제주도가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오래전부터 돌고래들의 터전이었던 제주 바다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이기도 한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110마리 안팎에서 정체 상태를 보인다. 매년 모니터링을 하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2017년 117마리까지 늘어났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2018년 107마리로 감소했다. 물론 5~6차례의 모니터링에서 전체 개체가 확인되지는 않기에 1년 사이 10마리가 줄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사하거나 혼획으로 폐사한 개체도 있을 수 있지만 연구진의 눈에 띄지 않은 개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지난 6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연안 물밑에서 노닐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 6월 대정읍 동일리 연안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물 위로 올라와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수는 2008년 124마리에서 2009년 114마리, 2010년 105마리, 2012년 104마리로 빠르게 감소했다. 2008~2010년 사이 그물에 걸려 혼획된 후 폐사하거나 불법 생포된 개체만 22마리에 달했다. 이후 정부가 남방큰돌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불법 포획돼 돌고래쇼에 동원됐던 제돌이 등 7개체를 방류하면서 2017년까지는 개체 수가 다소 증가했다. 방류된 돌고래는 각각 2013년 제돌·삼팔·춘삼이, 2015년 태산·복순이, 2017년 대포·금등이 등이다. 이 가운데 대포와 금등이는 방류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개체들은 야생에 잘 적응해 현재도 관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멸종위기를 겪는 남방큰돌고래 수가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인 상황에서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한 해상풍력시설을 돌고래 핵심 서식지에 설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며 우려한다. 제주대 해양과학대 김병엽 교수는 “난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 돌고래들이 먹이를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먹이활동이 어려워진 돌고래들이 외국 사례처럼 어민들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노리다가 혼획으로 희생될 위험도 높아지고, 어민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돌고래를 포함해 해양동물의 서식지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사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01213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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