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 기후행진] 파국의 고리, 화순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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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 윗편 기다란 방파제가 화순항 동방파제, 그 아래 조금 짧은 방파제는 해경 부두 방파제. (사진=조수진 기자)

“여기가 원래 모래가 풍부한 바다였어요.”

“에? 바위밖에 안 보이는데요?

이불 같은 구름이 유난히 파란 하늘에 깔려 있던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산방산 앞. 제주기후평화행진 아홉 번 째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행진단은 김재훈 제주투데이 기자 진행으로 용머리해안과 황우치해안, 화순금모래해변 일대를 걸었다.

산방연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황우치해안은 편평한 암반과 크고 작은 바위들이 깔린 모습이었다. 해수욕을 즐길만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우리가 해변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그런 아름다운 백사장의 모습을 지닌 곳이었다. 그 많던 모래는 어디로 갔을까.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됐다. 황우치해안 사구가 유실된 모습.(사진=조수진 기자)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김재훈 제주투데이 기자가 이날 행진 진행을 맡았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013년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화순항 2단계 사업을 통해 해양경찰 전용부두 방파제 축조 공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물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에 방파제라는 넓은 ‘벽’이 들어서자 해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황우치해안에 쌓여있던 모래는 바다 쪽으로 쓸려가고 암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경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고 행정은 땜질식 복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8년 황우치해안 백사장을 복원하기 위해 화순항 관공선부두 공사 시 발생한 파쇄석과 모래를 이곳에 쏟아부었다. 그 양은 약 18만톤에 이른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공사 차량 20톤 트럭 기준 900대가 모래와 바위를 이곳으로 실어 나른 셈이다.

그렇게 조성한 백사장의 모래들은 다시 파도에 모두 쓸려갔다. 단 두 달만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 당연한 일을 행정에선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막대한 낭비했다. 황우치해안의 경관은 이전보다 더욱 흉측해졌다. 백사장을 조성한다고 퍼날랐던 모래와 바위들 때문이다.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방파제가 들어선 뒤 황우치해안에 쌓인 모래들이 쓸려나가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암반이 드러나 있다. 왼쪽엔 백사장 복원을 하기 위해 제주도가 갖다부은 바위들이 흉물스럽게 쌓여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백사장 모래가 유실된 황우치해안에 제주도가 갖다부은 바위들이 흉물스럽게 쌓여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해안 침식이 심각해지자 제주도는 또다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계획했다. 바다 아래 해수 흐름을 막기 위해 잠제(수중 방파제) 2기를 설치한 것. 예산 160억원을 들인 ‘기괴한’ 설치물은 모래 유실을 막기는커녕 해양 수중 생태계를 훼손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행정이 경관을 복원하겠다고 나설 때마다 환경은 더 나빠졌다.

눈에 보이는 피해가 이 정도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이지고 있는 훼손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김 기자는 “여기서 빠져나간 모래들이 저 바다 아래 깔리면서 해양 생물의 서식지를 덮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해삼이며 뿔소라며 그런 생물들은 다 폐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쪽에 있는 사계마을에선 이곳에서 쓸려간 모래들이 어장을 덮쳐 피해를 입고 있다.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화순금모래해변 바로 앞에 설치된 해경 부두 방파제와 정박한 해경 함정. (사진=조수진 기자)

“예전에 금모래해수욕장에 와보셨던 분들은 놀라실 거예요. 이젠 사람이 없거든요. 누가 대형 선박과 대형 시설물을 바라보면서 해수욕을 즐기고 싶겠습니까. 거기다가 수질까지 최악이예요. 그마저 얼마 안 남은 해변은 콘크리트로 매립될 예정이고요.”

흉측하게 변해버린 황우치해안을 지나 도착한 곳은 화순금모래해변.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했다는 설명과 달리 썰렁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해경 함정과 그보다 더 큰 방파제가 화순앞바다를 장악한 모양새였다. 몇몇 참가자들은 “여기가 해수욕장 맞아요?”라며 몇 번을 되물었다. 

김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도내 해수욕장 중 이곳 금모래해변 수질이 최악이다. 지난해 6월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이 제주 지역 지정 해수욕장 12곳과 연안해역 물놀이 지역 6곳을 대상으로 수질 및 백사장 오염조사를 한 결과, 금모래해변 우측 지역에서는 기준치(100 MPN/100mL)를 넘는 장구균이 검출됐다. 도내 해수욕장 중 시료가 수질 기준치를 넘은 곳은 화순금모래해변이 유일하다.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시 시내에 위치한 이호테우해변보다도 수질 상태가 나쁜 것이다. 특히, 대장균과 장구균이 10MPN/100mL 미만으로 검출된 삼양해수욕장과 곽지해수욕장에 비하면 금모래해변은 34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참고로 같은 해 부산시 해운대해수욕장은 수질 조사 결과 장구균 0~10MPN/100mL, 대장균 0~10MPN/100mL으로 나타났다.

금모래해변의 수질이 나쁜 이유는 화순항 방파제로 지목된다. 도보건환경연구원은 금모래해변이 화순항 방파제에 가로막혀 순환이 잘 안 돼 오염물질이 바깥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약 900m에 이르는 화순항 동방파제에 더해서 해경부두 방파제까지 건설되며 바닷물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진단은 산방연대에서 출발해 황우치해안과 소금막용암을 거쳐 화순금모래해변에 도착해 둘러앉아 소감을 나눴다. 이들은 에너지전환, 난개발로 인한 환경·생태계 훼손, 동물권, 마을 주민의 정책 참여, 기록과 감시, 관광, 개발주의 논리, 탁상행정 등 다양한 관점에서 느낀 점을 공유했다.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화순금모래해변에서 볼 수 있었던 드넓은 바다 경관은 화순항 동방파제와 해경 부두 방파제, 해경 함정이 장악했다. (사진=조수진 기자)

화순의 문제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오니까 열폐수가 배출되는데 이로 인해 생태가 망가졌다. 마을 주민이 항의하자 행정은 보상 차원에서 여러 보조금 사업을 지원했지만 그 결과 화순이라는 마을은 망가진 것과 다름 없다. 현재 제주도에선 해상풍력 사업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우선 도내 화력발전소를 없애는 조건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에너지 전환 시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도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아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강정주민 고권일


화순이라는 지역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진 돌고래 쇼장(마린파크)이 있던 곳이었다. 많은 돌고래들을 가둬놓고 죽인 곳이기도 하다. 수년 전 유명 방송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돌고래 만지기와 돌고래 타기 같은 학대 행위를 하는 장면이 ‘예능’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돌고래 두 마리, 2021년 남은 두 마리마저 죽으면서 남은 돌고래가 다 죽고 없어지자 같은 해 폐쇄했다. 감금과 착취와 죽임의 현장이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바로 옆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여기 금모래해수욕장에 데려와서 놀았다. 그때만 해도 이쪽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마을이 너무 스산해졌다.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화순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파괴하고 있는 장면을 생생하게 봐오고 있다. ‘자본에 의한 개발을 해야지만 우리가 잘 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나’하는 생각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지금의 화순 모습을 예전에 주민들이 예견했더라면 개발을 허락했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멈출 수 있는 것들은 멈춰야 한다. 언론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시민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대정 주민 김정임


이번 행진을 기획하기 전엔 육지가 아닌 해안에서 ‘기후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늘 이곳에 와보니 수십 년 동안 온갖 프로젝트들로 점철된 공간이 화순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 프로젝트들이 들어오고 마을 공동체가 쪼개지다 보니 더 큰 개발이 들어와도 저항할 수 없게 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한 자료가 있다면 좋겠다. 20년 간의 개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 화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주도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기후평화행진을 통해 오름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곶자왈에도 가고, 정말 제주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서의 시선이었다면 아름다웠을 공간들이 슬픔을 전제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화순 역시 항구의 순기능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개발 논리에 의해 스러지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월평동 주민 김선


해안 사구가 무너지면서 쓸려나간 공간에 다른 데서 갖고 온 돌로 매립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책상에 앉아서 저런 일밖에 할 수 없는 행정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일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착잡하다. 

-김은아 해녀


해안 사구 유실로 인해 드러난 암반 위에 생긴 조수웅덩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방파제 때문에 주변 흐름이 다 바뀌었는데 그 변화를 아무도 몰랐고 왜 그런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개발이 너무 알량하고 근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은 절대 건드려서 안 되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활동가 보말


제주기후평화행진에 올 때마다 기후재난의 현장을 본다는 건 진짜 큰 스트레스다. 이렇게 난개발 현장을 돌다보면 10년, 100년도 모자랄 것 같다는 절망이 생긴다. 우리의 걸음이 제주를 변화시켜 언젠가 아름다워진 제주를 돌아볼 수 있는 행진으로 바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강정주민 이광희


여기 와서 도미노가 생각났다. 아주 작은 도미노에서 시작해 엄청나게 규모가 큰 붕괴로 이어지는. 처음 시작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손톱만큼 작은 곳에서 시작한 변화가 벽체만한 것도 무너뜨린다. 어떤 하나의 개발사업을 막아내지 못했을 때 이걸 계속 운영하기 위해, 활성화하기 위해, 그 사업의 명분을 위해, 계속 더 다른 일들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저항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상실해버린 채 정말 남김없이 잃어가는 곳들을 보고 있다. 화순 역시 그런 전형적인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지 않나. 땜질하기 위해 또다른 땜질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하고 있다. 이게 어디서 어떤 식으로 멈출까.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 멈출 것인가. 암담하다. 복원한다는 명목 하에 또다른 형태의 토목이 진행되지 않을까.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전환, 재자연화에 대한 고민이 정말 필요하다. 

-엄문희 강정평화네트워크 활동가


제주기후평화행진의 열 번 째 발걸음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숨골이다. 오는 10월 중순경 진행될 예정이다.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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