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수족관살이 17년… 돌고래 비봉이의 귀향

17년. 비봉이가 바다가 아닌 수족관에서 살아온 시간이다.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는 2005년 제주 비양도 인근 해양에서 어업용 그물에 걸려 포획됐다. 그때 나이는 여섯 살 정도로 추정된다. 비봉이는 스물두 살 무렵인 지난해까지도 돌고래쇼에 동원됐다. 그 사이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등 갇혀 있던 남방큰돌고래 7마리가 차례차례 자연으로 돌아갔다.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야생적응훈련 첫날이던 지난 8월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가두리 안을 헤엄치고 있다. 비봉이가 제주 바다로 돌아온 건 2005년 이후 17년 만이다. 해양수산부 제공

수족관에 남은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운명이 달라진 건 지난 8월이다. 정부가 비봉이를 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곧바로 야생적응훈련이 시작됐다. 입을 벌리면 던져주는 먹이가 아니라 먹고 싶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삶, 물 밖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물속을 유영하는 동료들과 어울리는 삶. 그것이 지금의 비봉이에게 유익한 것인지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 다만 비봉이를 지켜봐 온 이들의 바람은 하나다. 원치 않게 ‘구경거리’로 살아야 했던 비봉이가 다시 건강하고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는 것이다.

비봉이가 머물고 있는 가두리는 제주 서귀포 대정읍 앞바다에 설치돼 있다. 지난달 30일 신도포구에서 바라본 가두리는 방파제에서 불과 200m가량 떨어져 있어 배를 타지 않아도 그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정읍은 본래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로 유명하다. 훈련 지역을 이곳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비봉이 방류를 책임지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는 “동료 없이 혼자 야생훈련을 하는 건 비봉이가 처음”이라며 “혼자 있더라도 야생 무리와 동조하고 교류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3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방류를 이끌었던 전문가다. 제돌이의 경우 처음 바다 훈련에 들어갔을 당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고 도망가거나 가두리 한쪽에 가만히 떠 있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 비봉이는 현재 활어를 사냥하는 데 무리가 없는 모습이다.

야생 돌고래와 유사하게 호흡하고 잠수하는 등 건강상태도 안정적이다. 사람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라서, 먹이를 줄 땐 사육사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검은색 방진복을 입고 접촉시간도 최소화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동안 비봉이가 있는 가두리 근처를 지나가는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육안으로 확인한 횟수는 40여 차례에 달한다. 특히 돌고래 무리가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김 교수는 “돌고래가 의사소통할 때 내는 ‘휘슬음’이 가두리에 설치된 수중 기기에 기록됐다”며 “서로 신호를 교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무리가 지나갈 때 비봉이가 소리를 듣고 동료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봉이는 직경 20m, 깊이 8m 해상가두리 안에서 빠른 조류와 높은 파도 등 야생 환경에 적응해왔다. 지난 8월 31일 태풍 ‘힌남노’를 피해 비봉이를 수족관으로 옮기는 모습. 해양수산부 제공

훈련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두리 생활을 시작한 직후부터 장마와 태풍이 번갈아 몰아치면서 비봉이는 거친 물살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조류가 세면 그물이 찢어질 수 있고, 비봉이가 그물에 엉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밤새 사무실에서 가슴을 졸이다 아침에 드론을 띄워 비봉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반복됐다. 김 교수는 “비록 비봉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가두리 주변 CCTV를 보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 달라고, 잘 견뎌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훈련 재개를 위해 해상가두리로 다시 이송하는 모습. 해양수산부 제공

지난 8월 31일 태풍 ‘힌남노’가 강타했을 때는 비봉이가 본래 있던 퍼시픽리솜 수족관으로 이송돼야 했다. 바다 훈련을 재개한 건 그 뒤로 약 한 달이 지난 지난달 27일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처음부터 비봉이의 방류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건강 상태 등을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었다. 김 교수 역시 이달 중순 방류를 고려하고 있지만 ‘디데이’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로서 비봉이 방류는 별도 행사 없이 조용하게 추진될 예정이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가두리를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그물을 풀어 자연스럽게 바다로 나가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30일 해상가두리 안에서 수면 가까이 떠오른 비봉이. 비봉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드론 촬영은 비봉이가 기기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30~40m 이상 높이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다만 17년 만에 자유를 얻는 비봉이가 바로 무리에 합류할지, 혼자 다른 곳으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비봉이는 지느러미에 ‘8’이란 표식이 새겨져 있고 GPS를 부착하고 있어 방류 후 1년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남방큰돌고래는 이합집산 특성이 있어 혼자서 다니기도 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기도 한다”며 “비봉이가 꼭 여기(제주)에서 머물 이유는 없고, 혼자 있다고 해서 (방류)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바다에 나가면 비봉이도 하나의 생명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며 “방류 전까지 모든 정성을 다해서 지원하고, 이후에는 본인 스스로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주 인근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 분포한 개체군과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다. 해수부는 2012년 남방큰돌고래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50m 이내 관광선박 접근 금지’ 지침을 마련하는 등 보호에 힘쓰고 있지만 돌고래를 뒤쫓으며 생태계를 위협하는 관광선박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선 해양보호생물의 이동이나 먹이활동 등을 방해하면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해양생태계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상습적 규정 위반 업체의 영업정지, 관광선박 접근 금지 구역 및 해양생물보호구역 지정, 해양포유류보호법 제정 등 더 강력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국내 수족관에 전시·사육되는 고래들이 남아 있는 만큼 돌고래 보유와 관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동물원·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고래류 등 전시에 부적합한 종을 지정하는 내용의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해수부는 “비봉이 방류를 계기로 그간 추진해 온 해양동물의 복지 개선 정책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관련 법안이 이른 시일 내에 시행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기사 원문 수족관살이 17년… 돌고래 비봉이의 귀향-국민일보 (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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