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장생포 돌고래들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다쉼터

정승현 기자 / 기사승인 : 2022-10-11

<기획: 진정한 고래 생명의 도시 울산이 되려면>
-12마리 중 8마리 죽은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지금은 달라졌을까
-장생포 돌고래들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다쉼터
-러시아 스파이 벨루가 ‘흐발디미르’가 쏘아 올린 함메르페스트 바다쉼터
-울산고래축제 ‘어게인 장생포’ vs. 제주 남방큰돌고래 날 행사
-꽃분이에게 울산 남구청을 ‘고소할 권리’를 준다면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송정항 전경. 송정항의 경우 만 형태라 고래 바다쉼터를 조성하기 쉬운 환경이다. ⓒ정승현 기자

“아이고 좁은 데서 욕본다.”
“마음 아프네요. 한 마리 살기에도 좁아 보이는데. 궁극적으로는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고래들이 자기 습성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수족관에서는 고래를 학대하는 것 같아요.”

지난 9월 22일, 28일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만난 관람객들의 말이다. 대다수 관람객은 실제 고래를 보며 신기해하다가도 수조 규모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너무 좁다며 탄식했다. 좁은 수조를 늘리고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등 수족관 고래들의 서식 환경을 개선하는 건 필수적인 조치다. 하지만 좁은 수조를 늘린다고 해도 하루에 100km씩 이동하는 돌고래들에게는 여전히 좁디좁은 공간이다. 제돌이, 복순이, 춘삼이, 태산이, 비봉이 등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처럼 원래 습성대로 살 수 있는 바다로 보내는 게 최선이다.

하나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 있는 장꽃분, 장도담, 장두리는 모두 고래 학살지로 악명높은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 앞바다에서 잡혀 왔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장꽃분의 새끼인 고장수는 수족관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바다로 보냈을 때 생존 가능성이 작다. 장생포 고래들이 수족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고래 바다쉼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고래 바다쉼터는 바다의 일부 구역을 활용해 수족관 고래류의 자연 방류를 돕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생태 공간이다.

캐나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도 시민들의 동물복지 요구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고래 바다쉼터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흑해 연안에 건립되는 돌고래 방류센터는 시민사회에서 모금 운동을 통해 일부 자금을 마련했고, 아이슬란드 헤이마에이섬에 문을 연 벨루가 전용 바다쉼터는 영국 고래류 보호단체와 수족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다. 캐나다 시민사회와 해양 동물 전문가들은 ‘웨일 생츄어리 프로젝트’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캐나다에 고래류 바다쉼터를 건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노르웨이 원웨일 시민단체는 흐발디미르 벨루가를 위한 바다쉼터를 짓기 위해 현재 예산 마련을 위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울주군 송정항 전경. 고래연구센터 제공.
▲송정항 수심도. 고래연구센터 제공.

고래 바다쉼터 적합지 중 한 곳인 울주군 송정항
해수부 현장 답사 결과 송정항이 최적지로 꼽혀 

2020년 7월 22일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18살 수컷 돌고래 고아롱이 폐사한다. 이로써 고래생태체험관은 무려 8마리의 고래나 죽은 돌고래의 무덤이 된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항의와 생태체험관 폐쇄 및 바다쉼터 조성 요구가 빗발치자 울산시는 부랴부랴 고래 바다쉼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2020년 11월 4일 고래연구센터, 울산시청, 울주군청 관계자들은 고래 바다쉼터 적합지 중 한 곳인 송정항에 대한 조사와 현장 답사를 진행한다.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바다쉼터를 건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수질 오염과 소음 공해가 없고 ▲연중 적정 수온이 유지되고 ▲넓은 장소 ▲치료 및 보호 시설이 구비된 곳으로 꼽는다.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최재용 사무관은 “국내 여러 군데 바다쉼터 후보지 현장 답사를 한 결과, 울주군 송정항이 가장 적합한 곳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송정항 현장 답사를 통한 1차 검토 결과 ▲폐쇄형 방파제 ▲하수처리시설 조성 완료 ▲최대 10m의 수심 ▲수온(12~27℃) 등이 바다쉼터를 조성하기에 양호한 환경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항구 면적의 약 4분의 1만 유료 낚시터와 배를 육지에 대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바다쉼터 조성에 필요한 유효면적을 확보할 수 있으며 상처 등의 치료와 태풍 등 비상시에 고래들을 임시로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인 건강관리시설을 설치하기에 유리한 공공부지항이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송이 둘러싸고 있는 송정항 주변. 소나무 숲길에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정승현 기자
▲송정항 주변 연안에는 폐어구, 낚시용품 등 해양쓰레기가 구석구석에 모여있다. ⓒ정승현 기자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만의 형상을 한 송정항
소음 공해 없지만 해양쓰레기 관리 필요

지난 5일 기자도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한 송정항에 직접 가보았다. 서생송정마을회관 근처에 주차하고 송정항으로 이어지는 마을로 내려가는데 상당히 고요했다. 평일이기도 했지만, 관광명소가 아닌 소규모 마을 어장과 유료 낚시터로 활용되는 곳이기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을 주민들도 파도나 태풍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대부분 송정항 근처를 떠나 높은 지대로 이주했기 때문에 송정항 바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송정항 주변도 때때로 이동하는 배 엔진음만 울렸고 소음 공해는 전혀 없었다. 

이곳이 송정으로 불린 이유는 옛날부터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인데 지금도 국도 위쪽으로 아름드리 해송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 해송이 우거진 곳에는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소나무 숲길도 조성돼 있어 그곳에 올라가면 송정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송정항은 한눈에 봐도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만의 형태라 바다쉼터를 조성하기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래 해방운동가 릭 오베리 씨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리아스식 해안으로 반도와 섬, 만 등의 자연환경을 잘 이용하면 많은 건립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돌고래 바다쉼터를 만들고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다쉼터를 조성할 때 만의 입구만 막으면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리아스식 해안은 주로 조차가 큰 서해와 남해안에 국한되고 동해안은 닫힌 만 형태가 드문데 송정항의 경우 만 형태라 상대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만의 입구 일부를 따라 폐쇄형 방파제가 설치돼 있어 바다쉼터를 조성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소나무 숲에서 송정항을 내려다보면 폐어구, 낚시용품 등 해양쓰레기가 구석구석에 모여있어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고래연구센터 이경리 연구사는 바다쉼터를 조성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 중 하나가 해양쓰레기 등 연안 환경 오염 요인으로 인한 지속적인 유지 관리의 어려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정공원에서 바라본 송정항 풍경. 폐쇄형 방파제가 만을 둘러싸고 있어 파도나 태풍 피해가 작은 편이다. ⓒ정승현 기자

수심 깊고 수질 1등급인 송정항

그렇다면 송정항의 수질과 수심은 어떨까. 해양환경정보포털의 해양환경정보지도 수질 평가 항목을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 송정항 주변 해역의 수질은 연평균 1등급으로 나온다. 1등급은 수질이 매우 깨끗하다는 의미다. 송정항 낚시터 관리 사무소에서 일하는 주민 최복순 씨는 “예전에 해녀로 일하면서 느낀 건데 여기 바다가 다른 바다에 비해 굉장히 깊고 수질도 깨끗한 편”이라고 말했다. 송정항 근처에서 펜션 port 334를 운영하는 김세명 씨도 “송정항은 비교적 바람이나 파도, 태풍 피해가 크지 않고 다이버 활동을 했을 때 수심이 상당히 깊고 수질이 깨끗해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송정항의 수심은 10m로 고래생태체험관의 수조와 비교하면 두 배나 더 깊은 편이다. 

▲송정항 중앙에 있는 송정 유료 해상 낚시터. ⓒ정승현 기자
▲송정항에 정박한 배들. 바다쉼터를 건립한다면 배를 육지에 대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접안시설을 옮겨야 한다. ⓒ정승현 기자

송정항 중앙에 설치된 해상 낚시터와 어장
바다쉼터 건립하려면 낚시터와 어장, 접안시설 옮겨야

송정항 주변의 둥근 만을 따라 걸어가자 횟집 두 곳과 해녀들을 위한 쉼터가 보였다. 송정어촌계장인 이은우 씨에 따르면 이곳에서 물질하는 해녀는 총 20여 명인데 매일 물질하며 살아가는 현업에서 활동하는 해녀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자 송정 어선협회 사무실과 송정 유료 낚시터 관리 사무소가 나왔다. 송정 어선협회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니 마을 주민 A씨가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단순히 고래가 여기 와서 지낸다고 생각하면 괜찮고 좋은데 실제로 여기 있는 배를 다 옮겨야 하고 낚시터도 있는데 그게 과연 쉽게 될까 싶네요. 바다쉼터가 생기면 마을에 도움은 되겠죠. 반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실제로 송정항 중앙에는 해상 유료 낚시터가, 유료 낚시터 관리 사무소 근처 해안가에는 17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해상 낚시터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과 어장을 침입하는 수달을 쫓아내기 위해 데리고 온 4마리의 개가 있었다. 송정항 근처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은우 어촌계장도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과 마을 어장, 해상 낚시터 등을 옮기는 비용을 보상해주면 바다쉼터가 생겨도 괜찮다”며 “합의만 되면은 어민들이나 마을 주민들도 다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펜션 port 334를 운영하는 김세명 씨는 “돌고래 바다쉼터가 생기면 낙후된 송정항 주변이 발전하고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곳 송정항에는 현업으로 활동하는 어민이 별로 없고 배 역시 실제로 운영하기보다는 정박한 채로 허가권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며 “이 마을 전체를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바다쉼터를 조성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주민 송용태 씨도 “바다쉼터로 인해 마을이 개발되고 관광객도 생기면 좋겠다”며 “내가 생각하기엔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환영하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김효자 씨 역시 “바다쉼터가 생기면 마을이 발전하니까 좋다”며 송정마을 주민들은 낙후된 마을이 발전하길 염원하고 있었다. 실제로 울주군청 수산과 김동훈 주무관에 따르면 고래 바다쉼터 조성을 제안한 주체는 송정마을 주민들이었다. 

▲지난 10월 5일 동물권행동 카라, 핫핑크돌핀스, 환경운동연합, 윤미향 국회의원은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바다쉼터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바다쉼터 조성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선결 과제 
2년째 바다쉼터 관련 용역비 삭감한 기재부

10월 5일 해양수산부가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고래 바다쉼터 타당성 용역비 2억 원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또다시 전액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벌써 두 번째다. 본지는 어떤 이유로 삭감됐는지 자세히 알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로 당시 예산안 조정 과정 희의록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지만, 당시 회의록이나 자료, 관련 보고서는 보유,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 한 줄만 받았다. 결국 누가, 어떤 이유나 근거로 고래 바다쉼터 예산을 2년째 전액 삭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5일 동물권행동 카라, 핫핑크돌핀스, 환경운동연합, 윤미향 국회의원은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바다쉼터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했다. 이들은 “동물 학대에 해당하는 고래류의 수족관 사육과 동물 체험을 중단하기 위해선 바다쉼터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국회에서라도 바다쉼터 예산이 반드시 반영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최재용 사무관도 “예산은 국회 심의를 거쳐서 확정된다”며 “바다쉼터 문제에 관심 있는 의원들이 계시니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송정항이 있는 울주군에서도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울주군청 수산과 김동훈 주무관은 “고래 바다쉼터를 지자체 예산으로만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된다”며 “국비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해양수산부나 울산시에서 도움을 준다면 조성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족관 고래에 대한 책임이 있는 울산 남구청도 바다쉼터를 조성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하는 돌고래 방류 정책에 맞춰 대처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이미 기획재정부가 2023년도 예산안에서 고래 바다쉼터 타당성 용역비 전액을 삭감했기 때문에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10월 국정감사 기간이 끝나면 예산 심사 기간이 시작되며 이 기간에 바다쉼터 용역비가 살아날 수도, 그대로 삭감된 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는 “지금은 국회에서 예산을 다시 되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관련 상임위인 농해수위 소속 윤미향, 위성곤 의원 등이 돌고래 문제에 적극적이라 작년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단체에서는 이미 17년도부터 돌고래 바다쉼터 추진 시민위원회를 만들어 바다쉼터를 건립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7년도부터 올해까지 수족관에서 죽은 돌고래만 무려 21마리”라고 덧붙였다. 특히 “마린파크에 살던 일본에서 온 큰돌고래는 방류할 곳이 없어서 죽어가는데도 정부나 마린파크에서는 손 놓고 있었다”며 “반복되는 수족관 돌고래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은 바다쉼터”라고 강조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수족관에 갇힌 고래 21마리가 다 죽을 때까지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며 국회 농해수위 예결소위 위원으로서 반드시 고래 바다쉼터 조성 타당성 용역비를 마련토록 노력하겠다”며 “고래 바다쉼터는 인간과 동물이 같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재 수족관에 갇힌 21마리 돌고래 중 일본에서 잡혀 온 큰돌고래는 16마리, 벨루가는 5마리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8월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내 수족관에 사육·전시되는 벨루가의 해양 방류 추진 계획을 밝혔고 내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하고 있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의 벨루가·범고래 바다쉼터를 방류지로 우선 검토하고 있다. 이렇듯 5마리의 벨루가는 해외에 조성된 벨루가 바다쉼터로 보낼 수 있지만, 일본에서 온 큰돌고래 16마리는 갈 곳이 없다. 고래 바다쉼터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16마리 수족관 돌고래의 죽음이라는 비참한 소식을 또다시 차례로 들어야 한다. 

*기사 원문 읽기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9599601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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