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뉴스] 사냥 당하듯 쫓기는 돌고래떼…낚시 어선은 법망 사각지대?

[KBS뉴스] 사냥 당하듯 쫓기는 돌고래떼…낚시 어선은 법망 사각지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12348

제주 앞바다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최근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죠. 그런데 이 같은 돌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관광 행태가 ‘법 사각지대’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4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 낮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상,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평화롭게 노닐던 바다에 난데없이 관광객들을 태운 배 여러 척이 사방에서 빠르게 질주하며 다가왔습니다.

순식간에 돌고래떼를 에워싼 배는 모두 일곱 척에 달했습니다. 멀찍이서 ‘돌고래떼’의 출현을 확인한 또 다른 배 한 척도 포구 쪽에서 급히 속력을 내며 돌고래 무리가 헤엄치는 곳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돌고래에 바짝 붙어선 배들은 ‘좀 더 가까이’ 돌고래를 보기 위해 경쟁하듯 돌고래를 향했습니다. 돌고래떼의 이동 경로 주변을 종으로, 횡으로 움직이며 무리를 에워쌌습니다.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돌고래 위를 이들 선박이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모습도 이어졌습니다.

마침 이 장면이 ‘돌고래 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돌핀맨’, 이정준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그는 2015년부터 10년 가까이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비롯한 멸종위기종 고래를 꾸준히 촬영하며 다수의 해양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이날 이 감독은 2010년 제주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불법 포획된 뒤 수족관에서 돌고래쇼 등에 동원됐다가, 다시 제주 바다로 돌아가 새끼를 낳고 지내는 남방큰돌고래 ‘삼팔이’ 등을 추적하며 촬영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잔혹한 광경에 이정준 감독은 “마치 사냥하는 장면 같았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이 감독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돌고래 보호 활동을 하는 환경단체나 일반 시민 등 ‘감시의 눈’이 많은 곳에선 레저 선박들이 절대 함부로 운항하지 않는다. ‘감시의 눈’을 벗어나면 선박들이 버젓이 선수파(船首波)를 유도하는 행위를 하고, 심지어는 7척에 달하는 배가 돌고래를 완전히 에워싸는 무지막지한 모습까지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감독을 더욱 경악게 한 것은, 돌고래를 대하는 인간의 무자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돌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법으로 금지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제주 바다에서 배를 모는 일부 선장들이 ‘돌고래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돌고래들을 다른 곳으로 못 가게 여러 척의 배가 함께 포위하듯 운항하고, 일부러 파도를 만들면서 돌고래들이 배 가까이 붙어 올라타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수파를 타는 개체는 대체로 장난기 많은 어린 돌고래라서, 더욱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전문가들 “돌고래 선박 관광, 돌고래 생태에 치명적…접근하지 말아야”

이 같은 행위는 돌고래 생태에 치명적입니다. 선박이 만드는 소음 스트레스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배 하단에 달린 스크루(Screw·회전축 끝에 달린 나선면을 이룬 금속 날개가 회전하면서, 선박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에 치여 몸 일부가 잘려나가는 등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제주 바다에선 지느러미나 꼬리가 잘린 돌고래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박겸준 연구관은 최근 늘어난 무리한 선박 관광이 돌고래 생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이 같은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 연구관은 “처음에는 한, 두 척 수준이었던 돌고래 관광선이 이제는 낚시 어선, 레저용 배까지 관광업에 합세하면서 제주 바다에 서식하는 돌고래 무리에 접근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 “제주 바다를 오가는 배에 익숙한 성체(成體)는 비교적 능숙하게 선박을 피할 수 있지만, 경험이 없는 어린 개체 등은 방심하는 사이 ‘선박 스크루’에 몸 일부가 잘리기도 하는 등 상처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물리적 악영향 외에도, 레저 선박과 낚싯배 등이 돌고래에 무리하게 다가가는 행태가 돌고래 생태에도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박 연구관은 강조했습니다.

특히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이동하고, 소통하는 돌고래 특성상 선박 엔진과 스크루가 만들어내는 굉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등 생태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고래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박 연구관은 ” 물속에서 ‘소리’는 돌고래들의 매우 중요한 소통 수단이자 감각,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매개”라면서 “선박들이 돌고래 무리에 계속 접근하고, 무리 사이에 끼어드는 식으로 운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식의 무리한 운항은 남방큰돌고래의 번식과 먹이 사냥 등 활동에 악영향을 주고, 돌고래끼리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데에도 큰 방해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남방큰돌고래 등 최근 고래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사람들의 욕심을 악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선박이 성업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고래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오히려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 “돌고래 접근 금지” 해양생태계법 개정했지만…낚싯배는 예외?

고래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건의 속에 이 같은 위험한 돌고래 관광 행태를 막기 위해, 올해 4월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해양생태계법) 개정안이 마련돼 시행됐습니다. 여기에는 돌고래에 접근하는 거리뿐만 아니라, 먼 거리서 동시에 돌고래를 관람하는 선박 척수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정작 현장에선 ‘반쪽 짜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해양생태계법은 돌고래로부터 50m 이내 선박 접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돌고래 무리 300미터 내에서 3척 이상 선박이 동시에 관찰하는 것도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해당 지역 지방정부에서 과태료 최대 2백만 원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법을 만들어놓고도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해당 법 적용 대상에서 이른바 ‘체험형 배낚시’ 등 레저 행위에 쓰이는 낚싯배는 쏙 빠져 있습니다.

즉,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따른 유·도선, 마리나법상 마리나선, 수상레저안전법상 동력수상레저기구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선박 관광의 규정 위반과 관련해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낚시 관리 및 육성법에 따라 신고된 낚시 어선은 그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법 사각지대 속에서 “배낚시도 즐기고, 돌고래도 보세요”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팸플릿이 제주국제공항 도착장에서 배포되기도 하는 등 ‘돌고래 관광’이 버젓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양생태계법 제22 조는 ” 누구든지 해양보호생물의 멸종 또는 감소를 촉진하거나 학대를 유발할 수 있는 광고를 해서는 안 된 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시민들의 수많은 제보를 토대로 제주도에 신고하고 있지만,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건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낚시 어선 레저 선박들은 다 빠져나갔다”면서 “현장에서는 많은 선박이 지금 이 규정을 위반하면서 돌고래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제대로 된 단속이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답답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주도가 올해 4월 해양생태계법 시행 이후 제주 남방큰돌고래 선박 관광의 규정 위반과 관련해 과태료를 부과한 선박은 올해 8월을 마지막으로 총 3척입니다. 모두 동력수상레저기구로 등록한 선박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두 척은 올해 5월 남방큰돌고래로부터 50미터 이내로 접근한 행위로 적발됐습니다. 나머지 한 척은 올해 8월, 남방큰돌고래로부터 50~300미터 사이 거리에서 스크루를 정지하지 않은 잘못을 물어,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 해양수산부 “법 사각지대 인정…낚싯배 포함 등 시행규칙 개정 검토”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법 사각지대를 인정하며, 시행 규칙 개정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해수부 해양생태과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낚시 어선이 법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해)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는 점들을 고려해서, 시행 규칙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법 개정을 준비하며 ‘과연 현장에서 단속할 수 있는가?’, ‘유명무실한 법이 될 것’이라는 여러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진통 끝에 법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 중”이라면서 “낚싯배와 관련해서는 현장 단속의 어려움이나 모호한 규정 등과 같은 의견이 있어, 당시에는 낚시 어선을 제외한 나머지 선박만을 해양생태계법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법 시행 이후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자는 방침을 세웠고, 낚시어선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도 파악하고 있다”면서 “낚시 어선이 남방큰돌고래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가 지속해서 확인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낚시어선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시행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고래 연구 조사가 본격화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가 처음 세워지고 연구 활동에 나선 뒤에야 ‘우리 바다에 어떤 고래가 사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서식 여부는 2005년 처음 확인돼, 당시 개체 수 조사 등을 통해 10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보호종 지정 이후, 최근 120여 마리로 소폭 늘어난 것으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