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i] 울산고래축제 ‘어게인 장생포’ vs. 제주 남방큰돌고래 날 행사

<기획: 진정한 고래 생명의 도시 울산이 되려면>

1. 12마리 중 8마리 죽은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지금은 달라졌을까
2. 장생포 돌고래들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다쉼터
3. 러시아 스파이 벨루가 ‘흐발디미르’가 쏘아 올린 함메르페스트 바다쉼터
4. 울산고래축제 ‘어게인 장생포’ vs. 제주 남방큰돌고래 날 행사 
5. 꽃분이에게 울산 남구청을 ‘고소할 권리’를 준다면

울산고래축제 ‘어게인 장생포’ vs. 제주 남방큰돌고래 날 행사
정승현 기자 / 기사승인 : 2022-10-24

기사 원문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88336658790

▲지난 10월 15일 시셰퍼드,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고래축제를 고래보호가치를 담은 축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다시 열린 26회 울산고래축제
여전히 시대착오적이고 ‘고래’라는 정체성이 모호해

울산 토박이인 기자는 초등학생 시절의 장생포 고래축제 기억이 생생하다. 고래축제라기보다는 고래고기 시식 부스가 널려 있는 고래고기 먹는 행사에 가까웠다.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딱히 없어서 꽤 지루했고 부모님의 권유에 고래고기 몇 점 먹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동물 보호나 복지에 대한 인식도 없어서 이곳에 오면 ‘고래고기를 맛볼 수 있구나’, ‘고래고기 맛이  너무 이상하다’ 정도의 생각만 하고 집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기에 또다시 고래축제에 가진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20년 전과 지금은 과연 달라졌을까. 고래고기 먹는 축제가 아닌 고래와 공존하고 고래의 생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축제일까. 올해로 26회를 맞은 울산고래축제는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다시 열렸고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일원에서 ‘어게인 장생포’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고래축제는 시대착오적이고 정체성이 모호한 돈이 많이 드는 축제였다. 

▲지난 10월 14일 고래연구센터 회의실에서 김두겸 울산시장(오른쪽), 서동욱 남구청장, 이정훈 남구의회 의장, 정의필 한국고래문화학회장(왼쪽)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2년 고래학술대회가 열렸다. 울산시 제공.

고래고기 대통령 만찬장에 넣으려다 거부당한 울산시장 발언 논란

“한국고래문화학회 전임 회장으로서 고래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고래 축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게 오늘 이 학술대회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점심때도 고래고기 한 점 하고 왔어요. 대통령 만찬장에도 고래고기를 넣으려고 했는데 대통령실에서 좀 꺼려하더라고요. 아니, 왜 그러냐. 이것도 우리 식문화이고 정상적으로 잡아서 유통된 고래다. 이런 말씀도 드리긴 했는데.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도 고래 식용 규제 측면에서 뜯어고칠 게 정말 많아요.”

이는 지난 14일 열린 2022 고래학술대회에서 김두겸 울산시장이 발언한 내용이다. 과연 반려견 문화 축제에서 축제를 주최한 관계자가 점심으로 개고기를 먹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축제 현장에 고래고기 시식 부스가 사라졌지만, 울산시장의 문제성 발언에서 여전히 고래축제의 정체성이 고래고기를 먹는 축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고래고기 식당이 즐비한 곳에서 축제를 연다는 거 자체가 기괴하다”며 “고래고기 시식 부스는 없어졌어도 고래축제에 와서 관광객과 시민들이 고래고기를 즐긴다”고 지적했다. 결국 “장소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고래 축제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며 “태화강변으로 장소를 옮기거나 고래고기 유통이 줄어들도록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고래축제가 열리는 주요 행사장 길 건너편 편의점 앞에는 고래고기 도시락을 판매한다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정승현 기자

고래고기 시식 부스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
축제 건너편 길에서는 고래고기 도시락까지 판매해

실제로 지난 10월 13, 14일 기자가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를 방문했을 때 축제 주요 행사장만큼 고래고기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심지어 식당 안이 가득차 길 한구석에 자리를 놓고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년 고래고기를 먹으러 오는 A씨는 “한 접시에 15만 원 정도로 가격이 좀 비싼데 원래 이 정도 가격”이라며 “저 안에 가보면 사람들 다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고래고기 한 점을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편의점 앞에는 고래고기 도시락을 판매한다는 현수막까지 설치돼 있었다. 

고래고기 식당을 운영하며 고래문화보존회 대표로 활동하는 윤경태 씨는 “고래고기는 우리 민족 전통 음식”이라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도살해 잡는 개고기와 그물에 우연히 걸려서 잡히는 고래는 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발견되는 고래류도 80여 종이나 되는데 해수부가 미국 법을 따르면서 일본과 달리 우리는 포경도 못하고 고래고기 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생포에 있는 고래고기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고래고기 모둠. 축제 기간 고래고기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승현 기자

시민환경연구소 국민 인식조사 결과, 대다수 응답자 고래 고기 판매 반대해 

그렇다면 고래고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어떨까. 지난 1월 시민환경연구소가 진행한 해양포유류 보호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전국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1500명 시민 대상) 결과 응답자의 72.9%가 고래 고기 판매를 반대하며 76.3%가 고래고기 취식은 ‘식문화가 아니며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취식 의향을 묻는 말에는 ‘향후 고래고기를 취식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86.3%에 달했다. 이에 따라 시민환경연구소는 정부가 고래 포획과 유통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멸종위기종으로서 보호 대상인 고래를 대통령 만찬장에까지 들이려는 울산시장의 발상과 고래고기 식당이 즐비한 곳에서 열리는 고래축제는 시민 요구에 부응하지도 않을뿐더러 시대착오적이다. 고래 한 마리가 매년 포집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무려 약 33톤에 달하기에 고래고기를 먹는 축제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도 악영향을 끼친다.  

시민환경연구소 정홍석 연구원은 “남구청이 고래고기 식당 등과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다수 시민이 원하는 바를 외면하는 것 같다”며 “시민들의 인식을 반영해 축제에서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시셰퍼드코리아 김철호 활동가 역시 “축제장에서 온갖 고래 어쩌고 하는 프로그램들을 즐기고 고래를 귀여워한 다음 한 발짝 걸어 나와 고래의 피와 살을 먹는다는 발상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며 “고래를 학대하거나 살육하면서 고래 이미지로 지역을 세탁하려 하지 말고 진짜 고래를 사랑하는, 그래서 더 많은 시민의 발길이 닿게 하는 지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울산불교환경연대, 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은 10월 14일 고래축제가 열리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일원을 한 바퀴 돌며 고래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피켓 시위를 펼쳤다. ⓒ정승현 기자

올해도 ‘고래’가 빠진 정체성이 모호한 울산고래축제

“어떤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프로그램이 빠져 있는 게 문제겠죠. 프로그램은 상당히 풍성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생각하기에 고래, 고래 보호라든지 고래 사랑이라든지 고래의 입장이 되어보거나 고래를 더 이해하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요. 있다 하더라도 굉장히 초보적인 상식 전달 수준이거나 아예 고래 보호에 관한 건 거의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겠죠.”

이는 지난 2018년 시셰퍼드 활동가이자 아무튼 비건을 쓴 김한민 작가가 cbs 라디오에서 울산고래축제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문제는 지금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정동원 콘서트를 방불케 한 개막식, 장생이 수상 쇼, 고래 휠 퍼포먼스, 고래 퍼레이드, 고래 스트릿 댄스 경연대회, 장생포 열린음악회, 고래아저씨 뽐내기, 고래가요제 등이 이번 축제의 주요 행사들이다. 김한민 작가의 말처럼 프로그램은 상당히 많았다. 하나 프로그램에 ‘고래’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고래가 중심이 되는 축제라기보다는 공연, 퍼포먼스, 경연대회에 가까운 행사였다. 정관용 시사평론가 말처럼 올해도 ‘고래를 이유로 다들 모여서 춤추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놀자’판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축제였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시셰퍼드코리아 등 환경단체는 “이번에도 그저 축제에 고래라는 말만 덧붙인 ‘고래 없는 고래축제’를 기획했다”며 “시민들의 고래 보호 의식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지역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정체성이 모호한 축제를 기획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고래축제는 멸종위기동물인 고래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며 “고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도 이틀 동안 축제 현장에서 고래 생태에 대해 이해하거나 현재 고래가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지 등 고래 이야기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서도 그런 프로그램이나 교육은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고래문화보존회가 운영하는 부스에서조차 옛날 게임인 땅따먹기 체험, 어린이 대상 고래 그림 그리기 등이 진행됐고 고래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축제 프로그램이 아닌 고래학술대회에서만 상괭이 자원조사 현황, 고래와 암각화의 연관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울산제대로알기연구소 정해조 소장은 “고래축제에 가보면 왜 울산에 고래가 서식하는지도 알 수 없고 고래에 대한 콘텐츠나 스토리텔링이 매우 부실하다”며 “이 축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없고 기본적으로 축제 운영진이 고래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부산에서 고래 축제를 즐기러 온 백영철 씨는 “고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다”며 “고래박물관에 가도 생동감이 안 느껴지고 밋밋해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울주군에 거주하는 김영미 씨는 “3년 전보다 프로그램은 더 다양해졌지만, 살아 있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고래’라는 알맹이가 빠진 축제인 것 같다”고 전했다. 

▲고래축제장 각 구역에는 구피, 미꾸라지 등을 낚싯대로 잡는 체험이 가능한 부스도 3곳이나 마련돼 있었다. ⓒ정승현 기자

구피, 미꾸라지 잡기 체험 등 동물 학대 부스 3곳이나 마련돼
댕댕이 동문회, 글로벌 치맥존 등 고래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행사도 열려

무엇보다 구피, 미꾸라지 등을 낚싯대로 잡는 체험이 가능한 부스도 각 구역에 3곳이나 마련돼 있었다. 고래라는 동물을 주제로 한 축제인데도 동물을 학대하는 부스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축제를 기획한 고래문화재단 조용태 사업운영팀장은 “기본적인 고래에 대한 정보는 박물관이나 생태체험관에서 알 수 있다”며 “물론 고래 축제에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에 내년에는 좀 더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8년도에도 똑같은 지적이 있었지만, 오늘날 개선된 점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비춰볼 때 내년에는 실질적인 개선이 있을지 미지수다. 

이 밖에도 고래축제에는 동물훈련사로 유명한 이찬종 소장이 참여한 반려견 행사인 댕댕이 동문회, 큰 규모의 글로벌 치맥존 등 반려견 축제 또는 치맥 축제에 어울리는 부스도 있었다. 울산의 대표 축제인 만큼 총 12억 5천만 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갔지만, 정작 3년 전과 다를 게 없는 여느 축제서나 볼 수 있는 공연, 먹거리, 체험, 홍보 부스의 장터 판이었다. 특히 당초 예산안을 보면 5억을 제외한 나머지 7억 오천만 원은 체험 프로그램, 맛집 부스 운영 등에 편성됐지만, 수족관 고래의 복지 개선이나 고래 보호 관련 프로그램, 교육 등에 사용된 예산은 거의 없었다.

▲시민환경연구소, 시셰퍼드코리아, 울산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15일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에서 고래축제를 ‘고래보호 생태축제’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환경단체들 ‘고래보호 생태축제’로 전환 요청하는 기자회견 열어

시민환경연구소, 시셰퍼드코리아, 울산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15일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에서 고래축제를 ‘고래보호 생태축제’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고래생태축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잡탕’이 돼버린 축제가 안타깝다며 지금도 고래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매년 천 마리 이상의 고래가 불법 포획, 혼획, 좌초, 표류돼 목숨을 잃고 있으며 고래가 죽는 가장 큰 원인은 어업으로 인한 혼획이라고 주장했다. 혼획을 저감하는 그물이 개발됐지만, 어업 현장에서의 사용률은 미비한 수준에 그치며 밍크고래의 경우 한 마리에 수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 혼획과 불법 포획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도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는 4마리의 돌고래가 감금돼 있고 그들은 동물 학대 쇼를 펼치고 있다고 규탄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서민태 공동대표는 “아직도 돌고래를 감금하고 있는 공공기관은 울산 남구청이 유일하다”며 “고래생태체험관 개관 이후 무려 8마리의 돌고래가 폐사했고 여전히 장생포에는 고래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이 성업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드라마의 영향으로 돌고래를 보겠다는 돌고래 관광선은 더욱 성황인데 고래들의 무리를 헤치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관광선을 제재할 법적 수단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환경단체는 정부와 남구청에 △혼획된 고래 거래 및 유통 전면 금지와 밍크고래를 포함한 모든 고래류 해양보호생물 지정 △수족관 고래 복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돌고래 관광선 운영 제한 △울산 고래축제를 고래보호가치를 담은 축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7월 17일 핫핑크돌핀스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가 공동주최한 제11회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가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 인근 공원에서 열렸다. ⓒ정승현 기자

2012년부터 매년 7월 20일경에 열리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

그렇다면 해양환경단체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는 어떤 점이 다를까. 가장 큰 차이점은 규모였다. 울산고래축제의 경우 당초 예산이 대략 12억 5천만 원 정도로 편성됐지만, 남방큰돌고래의 날은 초저예산으로 천만 원 남짓 들어간 축제였다. 규모는 작지만,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에는 진짜 주인공인 고래를 위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가득했다. 고래뿐 아니라 모든 동물을 위하는 마음으로 먹거리도 동물성이 아닌 비건 음식이 제공됐고 축제에 사용한 도구나 물품 대다수가 재활용된 것이었으며 텀블러, 개인 식기 등을 필수 지참해 쓰레기도 거의 나오지 않은 그야말로 ‘고래보호 생태축제’였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와 해양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 알려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들을 최소화해 준비한 축제

지난 7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포구에서 남쪽으로 400m 떨어진 도구리알 공원.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들과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재주도좋아 팀원, 봉사자들이 Jeju dolphin day라고 적힌 흰 티셔츠를 맞춰 입고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트럭에서 간판, 현수막, 목재 파레트 등을 나르기도 하고 바다 친구들 포토존에 사용되는 지지대를 어디에다 어느 간격으로 설치할지 고심한다. 주인공인 남방큰돌고래, 바다거북, 문어 등이 그려진 나무 피켓에 ‘남방큰돌고래의 날’, ‘돌고래의 위기는 모두의 위기’, ‘돌고래는 수족관 말고 바다에서 만나요’ 등이 적혀 있다. 

7월 17일 핫핑크돌핀스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가 공동주최한 제11회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가 남방큰돌고래들이 뛰노는 서식지인 대정읍 앞바다 인근 공원에서 열렸다. 남방큰돌고래의 날은 시민들에게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와 해양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날로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수족관 돌고래 해방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던 해인 2012년부터 매년 7월 20일경 다양한 교육, 문화 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의 날은 생태 축제답게 준비 과정부터 남달랐다. 모든 활동에서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폐목재 파레트를 활용해 사진 작품을 설치하고 재주도 좋아 팀원이 만든 자투리 목재로 재사용 가능한 간판을 사용했다. 바다 친구들 포토존에 활용한 지지대는 행사를 준비한 연구원, 활동가, 팀원들이 직접 하나하나 색을 입혀 제작했고 행사 후 버리지 않고 핫핑크돌핀스가 운영하는 제주돌핀센터에 들고 와 활용하고 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들이 제작한 제주 남방큰돌고래 등지느러미 카달로그 ⓒ정승현 기자

위기에 처한 고래의 현실을 알리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핫핑크돌핀스 행사 부스 

행사 당일 드넓은 대정읍 앞바다가 보이는 공원에 들어서자 폐목재 파레트에 남방큰돌고래 행사 포스터가 붙어 있고 행사에 관한 설명, 프로그램 일정이 적혀 있다. 포스터 외에는 모든 게 다 재활용된 물품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일회용 컵 사용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 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주푸른컵이 쌓여 있어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음료는 푸른컵으로 마실 수 있었다. 개인 식기, 물병, 장바구니를 잊지 말라는 주최 측 안내문을 읽었지만, 텀블러를 깜빡한 기자도 푸른컵으로 시원한 토마토 착즙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푸른컵 옆에는 핫핑크돌핀스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에서 마련한 부스가 나란히 있었고 고래를 위한 행사답게 혼획을 가장한 고래 불법 포획의 문제점, 건강에 해로운 고래고기 문제 등이 적힌 핫핑크돌핀스에서 제작한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고래류 전시/공연/체험장에 가지 않기 △해양포유류보호법이 만들어지도록 국회의원들에게 요청하기 △더 많은 사람에게 위기에 처한 고래 소식 알리기 등 시민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도 적혀 있었다. 

바로 옆에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들이 제작한 제주 남방큰돌고래 등지느러미 카달로그가 놓여 있어 하나씩 가져갈 수 있었다. 등지느러미 카달로그는 남방큰돌고래 개체를 구분하고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각각의 고래 특징을 일련의 규칙에 따라 정리한 목록이다. 주로 육상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을 관찰하는 연구원들은 등지느러미를 이용해 돌고래들의 개체 식별을 하며 고래 연구하는 데 있어 개체 식별은 많은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실제로 연구 자료로 사용하는 카달로그는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가 제작한 등지느러미 목록은 돌고래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돌고래들을 구별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작됐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에서 열린 남방큰돌고래 보전 활동을 위한 사진전. ⓒ정승현 기자

남방큰돌고래 보전 활동을 위한 사진전 등 고래 보호 위한 행사 다양해

대정읍 앞바다가 보이는 넓은 공간 쪽을 향하자 남방큰돌고래 보전 활동을 위한 사진전 작품들이 보였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돌핀맨 이정준 다큐멘터리 감독이 직접 촬영한 남방큰돌고래 사진 중 실내 공간 전시용으로 적합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무리와 함께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들의 사진과 실제 서식지인 대정읍 앞바다를 한눈에 보니 감격스러웠다. 제주 취재 기간 기자는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돌고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만큼 바다의 고래들은 수족관에서의 삶과 달리 활기가 넘치고 건강해 보였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장수진 박사에 따르면 야생 바다로 방류된 첫 번째 돌고래인 제돌이의 경우 수족관에 있을 때만 해도 비실비실하고 체력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 바다에서 발견되는 제돌이는 근육질로 탈바꿈한 건강한 야생 돌고래의 모습이라고 한다. 

수족관에 갇혀 있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등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이제는 저 넓은 바다에 뛰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장생포 수족관에 갇힌 꽃분이, 도담이, 두리, 장수가 얼마나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 떠올랐다.

돌고래 동화책 낭독 등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어

“남방큰돌고래는 나이가 들면 배꼽 쪽부터 점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배에 점이 더 많이 생기고 겨드랑이 쪽까지 점이 생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수족관에서 만나는 큰돌고래들보다는 주둥이가 좀 더 길고 몸이 조금 더 얇아요.”

돗자리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김미연 연구원이 들고 있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등지느러미 카달로그를 보며 남방큰돌고래의 특징에 대해 배운다.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에 반짝인다. 한 아이는 돌고래가 어떤 먹이를 먹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와 핫핑크돌핀스는 아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장수진 연구원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돌고래를 생각하면 아이콘 같은 동물, 귀엽고 똑똑한 일종의 피상적인 이미지를 생각한다”며 “돌고래에 대해 잘 알면 막연히 그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어려움을 겪고 이게 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돌고래 한 마리 한 마리의 역사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알고 있으면 보전에 도움이 되고 재미있기 때문에 그런 지점들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김미연 연구원이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모양, 특성, 습성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정승현 기자

아는 만큼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핫핑크돌핀스
제돌이 이야기 들은 아이들 “제돌아 미안해. 몰랐어. 다시는 수족관에 가지 않을게”

“이건 자연스럽게 생긴 상처는 아니고요. 선박 관광이라던지 인간에 의한 활동 때문에 손상당한 상처입니다. 또 돌고래 한 마리 한 마리 개체를 식별할 수 있는 특징이 바로 지느러미라는 거 알아주시고요. 그러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이 책은 핫핑크돌핀스에서 제돌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화책이고요. 2013년에 발행된 도서입니다.”

핫핑크돌핀스 황현진 공동대표는 핫핑크돌핀스의 상징인 핑크색 돌고래 모자를 쓰고 모니터 화면의 돌고래 상처를 가리키며 인간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돌고래에 관해 설명한다. 옆에는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이야기’를 함께 낭독하기 위해 참여한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서 있다. 그들은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가 쇼를 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마음을 돌고래들의 입장이 돼 소리 내 읽는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이번 행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돌고래들이 처한 위기가 어떤 건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제주 돌고래 관광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돌고래 보호가 왜 중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활동은 상당 부분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아는 만큼 같이 행동할 수 있고 지켜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이 제돌이 이야기를 다 듣고 ‘제돌아 몰랐어, 미안해 다시는 수족관에 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만나 이야기해 본 십수 명의 관람객 중 수족관 고래들이 어디서 잡혀 왔는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고래 축제에서라도 고래의 현실이나 위기에 대해 알려주면 사람들의 행동은 조금씩 변할 수 있다. 핫핑크돌핀스는 앎의 힘을 믿으며 교육 활동에 힘쓰고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에서는 모든 음식이 다 식물성인 비건으로 제공됐다. 비건 먹거리뿐 아니라 지역 제철 농산물, 야채 등을 판매하는 부스도 운영했다. ⓒ정승현 기자

해안 쓰레기 줍는 ‘비치코밍’, 업사이클링 그룹의 밴드 공연, 비건 먹거리까지 풍성해

이 밖에도 해안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빗질하듯이 줍는 ‘비치코밍’ 프로그램이 진행돼 해양 쓰레기로 고통받는 고래와 바다거북 등 해양 동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천연 모기 기피제·질경이 만능연고·천연염색·멸종위기종 달고나 만들기 등 워크숍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열렸다. 

먹거리도 동물을 주제로 한 행사에 걸맞게 모든 음식이 다 식물성인 비건으로 제공됐고 지역 제철 농산물, 야채 등을 판매하는 부스도 운영했다. 행사 끝 무렵 흥겨운 공연을 선보인 그룹 ‘훌라’는 PVC 파이프, 샴푸 통 등 고물과 공구로 만든 업사이클링 악기를 연주하는 친환경 밴드였고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 정서를 음악으로 그려 제주를 알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제주 토종 스카밴드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강강술래하듯 다 같이 돌며 축제를 즐겼다. 

강정마을에 거주하는 보말 씨는 “제주도 개발이나 무분별한 관광이 심해지면서 고래들도 피해 입고 있다”며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바당구조대로 활동하며 고래나 해양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 알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또 “주변에도 이런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알리고 있고 많은 분이 낚시나 소비하는 관광이 아닌 바다를 몸으로 느끼고 아름다움을 체험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여자 김수진 씨는 “핫핑크돌핀스 후원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며 “양산 근처에 살다 보니 울산도 자주 갔는데 장생포 비좁은 수족관에 고래가 갇혀 있고 고래고기 집도 그 근처에 정말 많아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바당구조대 활동가인 최다예 씨는 “대정읍 근처에 살면서 고래를 자주 보는데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체가 해양 쓰레기나 선박 관광으로 피해 보는 게 정말 안타깝다”며 “고래들은 말도 못 하고 자기를 보호할 수 없으니까 인간인 우리가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7월 울산 고래문화재단 관계자들이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에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한다. 진짜 고래를 위한 축제는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보고 배운다면 2023년 울산고래축제는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혹은 2018년도에 환경단체들이 요구한 바대로 축제 기획 단계에 환경·동물보호단체를 참여시키는 건 어떨까. 부디 내년에는 울산고래축제가 ‘고래보호 생태축제’로 전환되길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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