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방큰돌고래에게만 ‘법적 권리’ 주려는 이유,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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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제주도, ‘생태법인’ 제도 도입 본격화…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일

▲ 남방큰돌고래 삼팔이와 두 번째 아기 돌고래 / 2013년 야생방류된 삼팔이는 지금까지 세 번의 출산이 확인되었다. 이 사진은 2019년 8월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삼팔이가 두 번째 출산한 새끼와 함께 헤엄치는 모습이다. ⓒ 핫핑크돌핀스

제주도가 생태적 가치가 있는 동물이나 강, 호수 등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주자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첫 번째 대상은 제주 남방큰돌고래다. 이들에게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내용과 함께 이를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과 조례 제정 등 추진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한 워킹그룹에 속해 있으며, 지난해 2월 국회토론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2년간 생태법인 논의에 참여하며 국내에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의문을 제기한다. 생태법인으로 지정된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과다 번식을 하면 오히려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거나, 남방큰돌고래의 먹이 생물인 한치나 광어의 권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문어에게도 법적지위를 부여하자고 누군가 주장했을 때 남방큰돌고래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법적 지위 부여하면 과다번식?

먼저 남방큰돌고래는 개체수를 쉽게 늘리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돌고래는 한 번에 새끼를 한 마리밖에 못 낳고, 그것도 암컷 돌고래가 보통 3년(임신 1년+육아 2년)에 한 번 출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주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되어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2013년 제돌이와 함께 고향 바다로 야생방류된 ‘삼팔이(D-38)’가 10년 동안 3번의 출산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삼팔이는 방류 및 야생무리에 합류한 뒤부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등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면밀하게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기에 출산 횟수를 비교적 정확히 셀 수 있다. 또한 정부가 2012년 남방큰돌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했는데도 지난 11년간 전체 개체수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멸종위기까지 떨어진 돌고래의 회복력이 매우 더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해양동물을 보호종으로 지정할 경우, 개체수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보호종 지정 후 과거 위협 요인이던 돌고래쇼를 위한 불법포획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연안난개발에 의한 서식처 감소와 과도한 선박관광, 폐어구·낚싯줄 등에 의한 위협 요인이 새롭게 발생하며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고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매년 새로 태어나는 새끼 남방큰돌고래를 약 10~15마리로 추산해볼 때, 매년 죽는 개체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새로 돌고래들이 태어나지만, 앞서 언급했듯 제주 바다에는 여전히 돌고래들을 죽음으로 모는 위협이 많기 때문에 보호종 지정 이후에도 전체 개체수가 늘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은 한 종의 해양동물이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멸종위기에 빠지지 않고 번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체수를 약 500마리 정도로 본다. 이보다 개체수가 적어지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지고 전염병 등 갑자기 어떤 심각한 위협 요인이 생겨났을 때 건강하게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제주도는 지역적 멸종위기에 처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해, 개체수를 늘릴 수 있는 강력한 보전대책으로 ‘법인격 부여’를 택한 것이다.

일각에선 남방큰돌고래들이 주거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법적 권리를 보장 받게 된다면 개체수가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개체수 정체현상을 보이는 최근의 상황이나 돌고래의 출산 관련 데이터를 감안했을 때 다소 비현실적인 우려로 보인다. 만약 생태법인 지정 후 남방큰돌고래가 과다번식하면, 관련 절차를 통해 지정을 해제하면 될 일이다.

광어와 한치는 왜 안 되느냐는 ‘투정’

▲ 제돌이와 남방큰돌고래 무리에 근접한 관광선박 / 2013년 야생방류된 제돌이(붉은원)가 동료 남방큰돌고래들과 살아가는 제주 바다에는 관광선박이 가까이 다가와 돌고래를 위협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 핫핑크돌핀스

이외에도 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준다면 한치, 고등어, 광어는 권리가 없느냐는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남방큰돌고래와 광어, 한치 등은 생태계에서의 가치와 역할, 먹이사슬에서의 위치, 개체군의 증감 상태, 멸종위기 등급, 절멸 또는 위협 상황에 놓인 개체군의 회복력, 현재 전체 개체수 등등에서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종의 특수성이나 고유성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두 똑같은 균질한 동물종으로 취급한다면 돌고래와 모기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억지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수족관에 갇힌 흰고래 벨루가와 돌고래를 풀어달라고 촉구하는 핫핑크돌핀스의 SNS에는 ‘왜 개나 고양이는 풀어달라고 하지 않느냐, 모기는 중요하지 않느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종을 두고 서로 간 차이를 잘 모르겠단 사람 중엔 ‘돌고래가 지능이 높아서 권리를 주려는 것이라면,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문어에게도 권리를 주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생태법인을 ‘단순히 동물에게 법적 지위를 준다’는 것으로 오해해 ‘왜 한 종에게만 선택적으로 권리를 주냐’고 제법 진지하게 주장한다.

생태법인은 멸종위기에 처한 중요한 자연생태유산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법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방큰돌고래 이외에도 제주도의 오름, 곶자왈, 지하수 등도 추후 생태법인 지정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다.

특히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고유의 해양생태계적 기능과 역할 이외에도 제주 연안에 오랫동안 정착해 살아오면서 제주도민들과 역사적, 사회적, 인문학적 차원에서 특수한 유산을 공유해 오고 있다. 수족관 불법포획이라는 ‘악연’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야생방류로 이어지고, 방류 후 10년 동안 계속 생존하면서 새끼까지 낳아서 야생 무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간직하고 있다.

수족관에 있던 돌고래가 방류된 뒤 야생 무리와 합류하고, 이후 10년간 생존해 새끼까지 낳는 감동 스토리는 제주 바다 외에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다. 불법포획으로 단절되었던 생태적 순환이 야생방류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 생태법인 제도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제주도의회에서 생태법인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핫핑크돌핀스

폭염, 폭우, 산불, 태풍, 지진, 홍수, 코로나19 등 전례 없는 생태·기후위기가 현실화됐다. 생태환경을 돈벌이 수단과 자원으로만 보는 과거의 틀로는 인간이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태계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먼저 멸종위기에 처한 남방큰돌고래들에게 법적 권리를 줌으로써 새롭게 ‘생태사회’로 나아가자는 제주도의 제안은 세계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려는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등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가치와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 사회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생태법인 도입이 이뤄진다면 한치와 광어의 법적 권리까지 논할 정도로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은 보다 높아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한 기사
[동아일보]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 부여… 신중한 접근 필요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1116/122212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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