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고래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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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검찰개혁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동물
[오마이뉴스 김요나단 기자]

▲ 휴머니멀 ‘어떤 전통’ 페로제도의 전통 고래사냥 ⓒ MBC

지난 16일 MBC에서 반영된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에서는 ‘어떤 전통’이라는 부제로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포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페로제도에서 행해지는 들쇠고래(Pilot Whale) 사냥 축제와 일본 타이지 마을의 돌고래사냥이다. 이 두 지역은 모두 오래 전부터 고래에게 식량자원과 기름을 얻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래사냥을 하는 세계에서 몇 곳 안 되는 포경 합법 지역이다.

들쇠고래는 길이 5m 남짓의 작은 돌고래로 과거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척박한 지역의 페로제도 원주민들에게는 귀중한 식량자원이었다. 고래사냥이 시작되면 어부들은 배를 이용해 고래들을 만으로 몬다.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 못 가는 고래의 유대관계를 이용한 사냥법이다. 얕은 만으로 떠밀려 온 고래들을 육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수공(고래의 숨구멍)에 갈고리를 꽂아 강제로 끌고 나와 도륙한다. 이 과정에서 고래들의 비명과 고래들이 흘린 피로 바다가 물든다.

페로제도의 사람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고래의 사체를 두고 얼굴과 온몸에 피 칠갑을 두르고 해맑게 웃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지켜야 할 자랑이고 ‘어떤 전통’이다.

전통으로 감춰진 동물에 대한 폭력과 욕망

▲ 휴머니멀 ‘어떤 전통’ 일본타이지마을 돌고래사냥에 대한 동물권 활동가 번즈의 인터뷰 ⓒ MBC

일본 타이지 마을도 페로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이지 마을 주민들은 어린 돌고래를 포획해 돌고래쇼 공연을 한다. 현재 이들은 돌고래쇼로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어린 돌고래는 가족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눈앞에서 가족들이 끔찍하게 죽는 광경을 목도해야 한다. 그러나 더는 일본 타이지 마을의 바다는 피로 물들지 않는다. 고래사냥의 비인도적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에 어부들이 새롭게 고안한 방법으로 사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래의 척수에 빠르게 송곳을 꽂은 후 피가 나오지 않도록 재빨리 마개로 틀어막아 버린다. 피 한 방울 흐르지 못한 채 고래는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다는 평온하다. 단지 죽은 돌고래들이 바다에 부표처럼 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족과 분리된 어린 돌고래들은 쇼를 할 수 있도록 열악한 망에서 사육된다. 겨우 망을 벗어난 돌고래들도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친구를 버리고 혼자 도망갈 수 없어서다.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고래사냥이라는 유산이 현재 지구와 자연에도 유효한 가치인지 ‘휴머니멀'(인간도 동물이라는 의미)인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들만의 언어로 세련되게 포장된 착취의 다른 이름이 전통이라면 그것은 구습이고 악습일 뿐이다. 고래 사냥의 전통이 정말 우리 인간의 전통으로 보존하고 지켜야 할 특수한 가치인지 인간에 의한 동물에 대한 폭력과 욕망을 감추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한지 ‘어떤 전통’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밍크고래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여기 고래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검찰 개혁’이 주요 화두다. 고래고기와 검찰개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검경 갈등의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래고기가 있다. 일명 ‘울산 고래 고기 환부 사건’은 대표적인 검-경 갈등 사례다.

밍크고래의 기름은 화장품의 주원료로 쓰이고 고기는 식용으로 유통된다. 밍크고래는 포경이 금지된 멸종위기 보호종이다. 우리나라는 우연히 어획망에 걸린 고래만 유통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4월, 울산 경찰은 불법 포획의 증거로 시가 40억 원어치의 밍크고래고기를 압수했다.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밍크고래를 27t이나 보유하고 있던 유통업자를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불법 포획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경찰이 압수한 고래고기 27t 가운데 6t만 폐기 처분하고 21t을 피의자에게 돌려줬다.

경찰은 이후 사건 수사 과정을 수시로 브리핑 했고 관련자들에 대한 각종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법리적 하자 등을 이유로 기각하면서 검경 갈등 상황은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사건은 검찰의 전관비리 의혹, 지역 토착세력과의 유착 의혹으로 번졌다. 고래고기 사건은 어쩌다 ‘비리 의혹’으로 번졌을까?

▲ 황운하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고래고기를 둘러싸고 촉발된 검경갈등의 내막과 검찰개혁의 당위성 담은 내용의 책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 해요미디어

당시 유통업자인 피의자측 변호사는 2013년까지 울산지검에서 고래와 관련된 해양·환경 분야를 담당했던 검사 출신으로, 고래고기를 돌려준 검사의 선배였다. 이는 ‘전관예우’의 전형적인 알고리즘 아니냐는 의혹을 품게 했다.

경찰은 담당변호사와 관련해 변호사 사무실·통신·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담당검사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지만, 검찰은 통신, 계좌에 관한 일부만 허용했으며 담당검사는 외국으로 연수를 떠나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고래고기 수사를 놓고 검경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핫핑크돌핀스는 “포경업자들의 불법을 단죄해야 할 검사가 오히려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건에 대해 울산지검이 진실을 밝힐 의지가 전혀 없음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나서서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혀 고래고기를 둘러싼 유통업자-변호사-담당 검사의 ‘추악한 커넥션’을 끊어버릴 것”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의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불법포경으로 희생된 밍크고래의 피 맺힌 분수공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쩌면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관련된 민감한 환부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 그 중심에 서있던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라는 책까지 출간하면서 검찰개혁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우리 안의 ‘어떤 전통’

지난 2019년 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두를 정부가 공식 피해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가해 기업의 입증 책임을 늘리고 피해자에게는 추가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지난 9일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에 대해 기재부와 법무부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20대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법무부는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기업이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에 반대했다. 기재부 또한 장해급여 신설이 요양 생활 수당과 비슷한 성격이고, 추모사업 추진도 기업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 추모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라며 부적정 의견을 냈다.

이에 특조위는 16일 서울 중구 특조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개정안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절규의 산물”이라며 “국회는 20대 국회 회기 내 특별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오래 전부터 환경과 동물 관련 단체에서 활동해온 가습기살균제 특조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실의 인과관계 입증이 지난하고 어려운 싸움인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동물 발굴사업에 참여하게 된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 별정직·계약직·임기직 등 필요에 따라 일정 기간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참고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동물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보고 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 일부 동물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급성 호흡곤란 증상을 보인 반려동물들이 집중 발생하면서 알려졌다).

그는 특조위 내에서도 동물피해 발굴 사업의 인식과 한계의 경계선에서 ‘늘공'(늘 공무원의 줄임말, 직업 공무원)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인간 사회에서 동물은 늘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전통’ 앞에서 늘 최약자고 후순위로 배제되고 밀리고 있었다.

▲ 가습기살균제 동물피해 제보사례 내역 ⓒ 김요나단

비건식당에서 만나 간단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 우리의 대화는 얼마 전 방영된 프로그램 ‘휴머니멀’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고래고기 인터뷰를 안주 삼아 떠들던 중, 그는 우스갯소리로 “밍크고래가 검경개혁의 부싯돌 역할을 한 것 아니냐. 가습기동물피해 사례 접수제보가 주는 함의는 밍크고래 사건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일견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작게 웃었고 크게 한숨 쉬었다.

다소 억지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고래고기가 일으킨 작은 파문의 나비효과는 ‘검경개혁의 폭풍’으로 번졌다. 반려동물 피해발굴 사업이 특별법 통과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한 채 표류 중인 현 상황에서 밍크고래가 검경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던 것처럼, 가습기살균제 동물피해 발굴사업이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통과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경의 오랜 갈등이었던 ‘어떤 전통’을 밍크고래가 풀었던 것처럼 국회 법사위와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가 만들어낸 ‘어떤 전통’의 프레임을 가습기살균제 동물피해 사례가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휴머니멀’인 나는 기대해본다.

▲ 가습기살균제 동물피해 포스터 ⓒ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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