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국내1호 생태법인 ‘제돌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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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논의
사람은 물론 기업도 갖는 법인격, 돌고래가 안 될 이유 있나
뉴질랜드 황거누이강이 대표적…후견인 통해 권리 행사 가능

13일 제주 서귀포 대정 앞바다에서 등지느러미에 ‘1’이 찍힌 제돌이(왼쪽)가 헤엄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13일 제주 서귀포 대정 앞바다에서 등지느러미에 ‘1’이 찍힌 제돌이(왼쪽)가 헤엄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법률에서 자연은 누군가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건, 자연인과 법인 등 법인격체(法人格體·legal person)다. 자연인은 사람을, 법인은 기업이나 재단 등을 가리킨다. 법인은 사람이 아닌데도 자신의 이익이 침해됐을 경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같은 동물에게 법인격을 주면 어떨까?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지난 2월 제주에 지역구를 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송재호, 위성곤 의원이 국회에서 입법정책토론회를 연 데 이어, 7일에는 제주도의회가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자연의 권리’ 허무맹랑한 공상 아니다

생태법인은 자연과 동식물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대해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후견인(대리인)을 두어 법인의 법적 권리를 지키도록 한다. 언뜻 보면 생태주의자의 공상 같지만, 우루과이의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이렇게 일갈했다.

“그래요. 이상하게 들리죠? 자연에 권리가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인권을 누린다는 말은 완전히 정상적으로 들립니다. 1886년에 보편 정의의 모범이라는 미국 대법원이 인권을 사기업에 확대했습니다. 법이 기업에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마치 그들도 숨을 쉬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데이비드 보이드, <자연의 권리>에서 재인용)

물론 생태법인은 노동권, 참정권 등 ‘적극적 권리’가 아닌 서식지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감금되지 않을 권리 등 ‘소극적 권리’를 누린다. 이와 비슷한 취지에서 미국의 동물단체 ‘비인간권리프로젝트’는 실험실이나 동물원에 감금된 침팬지, 코끼리 등이 법인격체라고 주장하면서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인신보호영장은 부당하게 억류·감금됐을 때, 법원에 청구하여 피해자를 풀어주도록 하는 제도다.  

2012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고 있는 제돌이(위 사진 아래쪽). 이듬해 여름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가 9년 가까이 살고 있다. 13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등지느러미에 ‘1’이 찍힌 제돌이(오른쪽)가 헤엄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핫핑크돌핀스 제공

2012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고 있는 제돌이(위 사진 아래쪽). 이듬해 여름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가 9년 가까이 살고 있다. 13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등지느러미에 ‘1’이 찍힌 제돌이(오른쪽)가 헤엄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핫핑크돌핀스 제공

생태법인 개념을 처음 제안한 진희종 제주대 강사(언론홍보)는 14일 “남방큰돌고래는 온전한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법인격적 권리를 보유하고 대리인을 통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식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가 도롱뇽 서식지를 훼손할 것이라며, 지율스님과 환경단체가 도롱뇽을 원고로 착공금지가처분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법원은 2006년 “자연물인 도롱뇽은 사건의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자연은 누군가의 소유물이지, 권리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해석에서다. 하지만 자연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생태법인 제도가 도입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박규환 영산대 교수(법학·헌법학회 부회장)는 7일 토론회에서 “당사자 능력을 인정받는 생태법인이 법정에 나가 다퉈 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 권리’ 부여받은 황거누이강

앞선 외국의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게 뉴질랜드의 황거누이강이다. 2017년 제정된 황거누이강법은 동식물과 강물, 바위 등 강 유역에 법인격을 부여하면서, 중앙정부와 마오리족이 각각 지정한 인사들이 법적 후견인을 맡도록 했다. 황거누이강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강의 소유다. 황거누이강 법인은 기업처럼 사무실을 두고 강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다. 황거누이강의 강바닥을 준설하는 공사가 벌어지면, 황거누이강은 공사 주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수 있다. 과거 강바닥은 국가의 소유물이었지만 지금은 강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 110~120마리 산다. 세계 멸종위기종을 등재되는 적색목록의 준위협종(NT)으로, 최근 풍력발전 등 개발사업과 선박 관광 등으로 교란 위기에 처했다. 고래연구센터 제공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 110~120마리 산다. 세계 멸종위기종을 등재되는 적색목록의 준위협종(NT)으로, 최근 풍력발전 등 개발사업과 선박 관광 등으로 교란 위기에 처했다. 고래연구센터 제공

남방큰돌고래는 1990년부터 불법 포획되어 돌고래쇼에 동원됐다.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던 제돌이를 비롯해 7마리의 돌고래가 고향 바다로 돌아가면서 보전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재는 110~120마리가 제주 해안가에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주요 서식처 중 하나인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 계획이 세워지면서 생태 교란 우려가 일었고, 결국 건설 계획은 지난해 제주도의회에서 부결됐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황현진 대표는 “남방큰돌고래는 선박 관광으로 인해 먹이 활동과 휴식을 방해받는 등 삶의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진희종 강사는 “제주도특별법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을 특수법인으로 지정하고 후견인의 지정, 역할 등에 관한 조항을 넣을 수 있다”며 “추후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해 구체적인 설계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규환 교수는 “사회적 상황이 성숙할 때까지 조례로도 운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현행 정보공개 관련 법률의 경우도 청주시의 조례가 만들어진 뒤 공감대가 확산돼 제정됐다”고 소개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2022년 1월 1일 핫핑크돌핀스가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촬영한 제돌이와 춘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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